나의 입사를 결정했던 장은 임기가 만료되어 나가고, 새로 온 기관장은 술 좋아하는 낙하산이었는데, 본인에게 아부하는 자들에겐 귀를 열고 아닌 자들에겐 관심 없는 전형적인 멍청이 상사였다. 행시를 합격했다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회식할 때 본인테이블 양옆으로 여직원을 앉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에게 눈밖에 난 사람을 모아 팀이 구성되었는데, 그 팀에 내가 속해있었다. 아마 기관장을 빨아주던 이와 그렇지 않은 자들 사이에 알력이 발생했을 거고, 엿 되어봐라 하고 현 집권에 우호적이지 않는 사람들로만 팀을 꾸린 것일 거다.
바뀐 상사는 본인만이 생각이 무척 강해서, 남들의 생각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꼰대였다. 그도 옛날 사람이라 지역색이 무척 강했는데, 본인과 동향인 선배들을 엄청 챙겼다. 팀 중에 보스보다 나이는 많지만 부하인 직원이 있었는데, 업무분장이 정확히 되어 있지 않아 더럽게 엮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직원의 업무까지 내게 넘기려는 순간 나는 사무실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건 제 업무 아니잖아요' 다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진 선배의 업무도 부하가 해야 하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보스는 날 싫어하기 시작했다. 연차를 올리면 일부러 한참 있다 결재를 해준다는 건 다반사였고, 결재건도 보고도 못 본 체했다. 그런 건 참을 수 있었는데 참을 수 없던 건 그의 갑질이었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항상 점심을 같이 먹는 게 문화였다. 식당 어디 갈까를 물어보면 항상 '어디 갈까요' 물으면서 'XX요'라고 말하면 '거기 말고 다른데 가자'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거기까진 원래 이상한 사람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오늘 회의비로 20만 원이 잡혀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묻자 그는 정확히 'XX식당에 긁어놓으라'라고 했다. 그걸 그 자리에 있던 팀원이 다 들었다. 그렇게 긁고 지나가는 줄 알았다.
관행이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게 감사에 걸렸다. 감사관은 그날 누가 식사를 했냐고 물었다. 당연히 식사한 사람은 없고 결제만 되어있을 뿐이었다. 보스도 감사실에 다녀왔다. 그 후 보스는 날 조용히 불렀다. '대리가 긁은 걸로 하세요' 난 바보 같게도 '아무도 내편이 아닌 회사, 이 보스에게마저 내쳐지면 갈 곳이 없다'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병신 같은 생각이었다.
그때가 5년 차쯤 되던 시기였는데, 아무 데도 의지할 데가 없었다. 외부의 알력에 내가 점점 깎여나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까지 회사를 다녀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입사하기 전의 200개의 입사지원서와 숱한 실패와 나오면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는 불안한 생각이 날 엄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