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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Apr 21. 2024

나로 인해 사람들이 싸우는게 좋았다

그때쯤에는 베뉴를 즐겨 갔다.  베뉴는 소울풀한 음악을 잘 틀어주었다. 당시 일로 스트레스 받으면 술로 풀었다. 갈땐 대학동기랑 같이 갔다. 한번은 대학 동기랑 춤을 추고 있는데 같이 팀플을 했던 오빠를 봤다. 우린 동시에 “어?”라고 반응했다. 그 오빤 마케팅 수업에서 만났던 사람이었다. 원래 흑인음악 동아리를 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쳤을 땐 졸업하고 난 이후였다. 우린 가볍게 허그를 했다.     


“잘 지냈어?”

“오빠두요?”     


그 오빤 다른 여자와 이야기 중이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우린 한동안 이야기를 했지만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베뉴에는 나와 동갑인 디제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음악을 잘 틀었다. 난 음악을 잘트는 애가 좋아서 번호를 땄다. 그 뒤로는 갈 때 연락을 하고 갔다. 내가 도착하면, 걘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 걔의 모습이 좋았다.     


“넌 무슨일해?”

“음악사업부에서 일하고 있어”

“오 본업도 음악쪽이구나”

“넌?”

“난 일반 회사 다녀”

“창 오빠랑은 어케 알어?”

“여기 자주 와서 안면 익히게 되었어”

“난 학교에서 알았는데”     


이렇게 친해지게 됐다. 걔가 다음 타임으로 바뀌면 우린 바에서 칵테일을 한잔씩 했다. 뒤이어 다음 디제이로 바뀌었다. 그는 오래된 음악을 트는 사람이었다. 오래된 음악이라고 해봤자, 내가 태어나기 전에 발매된 음악이었다. 그 음악들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었지만 들어보았음직한 음악이었다. 멜로디를 중시하는 나는, 가사는 몰라도 그 음의 호소력이 짙으면 좋아했다. 그런 플레이리스트들이 모여서 내 20대를 규정했다. 그와 친해질 무렵, 베뉴에서 한참을 춤추다 다른 곳을 가보자 해서 소울트레인에 가게 되었다. 시간은 새벽 4시 쯤이었다.     


그날은 매우 슬펐다. 왜 슬펐는진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누구랑 헤어졌나? 하긴 인생에서 기쁠때보단 슬플때가 더 많으니까. 아마도 그날도 내 옆에 있지 않은 누군가로 인해 고독했던 밤이었다. 지구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입장하자마자 바에 엎드려 있었다.  그때 누군가는 나를 응시했다. 주문을 받는 사람은 ‘뭐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한참을 엎드려 있다가 ‘밀러 주세요’라고 했다. 지켜보고 있던 앤 레몬이었다. 나의 외톨이같은 모습에 그는 동질감을 느끼는 듯 했다.      


“진짜 이름이 레몬이야?”

“응 민증 보여줄까?”     


해서 본 민증에는 거짓말처럼 레몬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난 걔가 좋았다. 보자마자 내가 갖고 있는 분위기가 걔랑 비슷한 것 같았다. 걔도 그걸 아는 것 같았다. 걘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웃고 있어도 슬픈 분위기를 지어내는 애였다. 거기서 일한진 1년정도 됐다고 했다. 걔도 일이 끝나면 근처 바에 가서 시간을 때우는 모양이었다.      


난 주말마다 놀러가서 걔와 담배를 폈다. 문밖에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너구리굴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건 상관없었다. 어짜피 걔들이 날 봐도 기억하지도 못할뿐더러, 그곳의 분위기는 아무도 그런걸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었다. 담배를 피우면 배덕감이 들었다. 담배가 주는 심리적 안정효과는 모르겠지만, 그냥 짜증이 나거나 불안하거나 무료하면 폈다. 원래는 혼자 피는데 레몬이가 있으면 걔랑 같이 필수 있는게 좋았다. 그렇게 내가 레몬이를 끌고 나오면, 손님이 끌고나오는 거니까 고용주도 별말없이 허용해 주었다.     


레몬이는 이야기를 해보면 좀 특이했다. 그런 사람이 가지는 고유성 때문에 타인에게 호기심을 가지곤 하는 나였지만, 얘기할수록 그랬다. 어쩌다 가족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러다가 어떤 베트남 여자의 국적을 얻게 해주게 하기 위해 그녀와 위장결혼을 했다고 했다. 처음에 들었을땐 ‘아니, 그런건 미국에서나 일어나는 일 아니야?’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한국에서도 그런 일은 있었다. 내가 모를 뿐이었다. 그가 그런 내밀한 이야기를 해주면 나도 걔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때는 생각처럼 되지 않는 회사의 사람들 때문에 술을 많이 마셨다. 한참을 그렇게 마시고 나면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일 때문에 슬픈건지, 사랑 때문에 슬픈건지 모르겠었다. 한번은 레몬이랑 술을 먹었는데 이태원의 해밀튼 호텔 돌담에서 “왜 나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거야”라고 엉엉 울었다고 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가 그 일화를 말해주었을 때 얼굴의 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순간에 같이 있어준 그가 고마워서 우린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의 일은 4시가 넘어서야 끝나서, 그때 만나서는 그보다 늦게 운영하는 펍에 가야 했다. 술은 이미 마셨고, 생활리듬이 완전히 올빼미인 그는 그때쯤이면 식사를 해야 했다. 그래서 식사가 가능한 브런치를 파는 곳에 가서 음식을 먹곤 하는게 우리의 데이트라면 데이트였다. 걔랑 만나면 주로 일상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가게에 누가 왔고, 누가 진상을 부려서 그걸 처리하느라 애먹었다는 이야기. 별거 아닌 이야기였지만, 그런 이야기를 함께 하고 있으면 그래도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걔가 고맙게 느껴졌다.      


가끔 일이 끝나면 같이 베뉴에 가기도 했다. 베뉴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디제이가 음악을 틀고있는 때도 있었다. 디제이가 음악을 잘 트는게 좋았는데, 그가 좋은건지 그의 음악이 좋은건지 헷갈렸다. 지금 생각하면 음악이 좋았던건데, 나는 그를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일을 하는 동안에는 믹스포인트를 만지며 그의 앞에서 얼쩡거리곤 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그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난 또 주정을 부렸다.     


“우리 사귀자”


그런 말을 한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그 말을 했을 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이 다 우리 테이블을 쳐다봤다고 했다. 어처구니 없었지만, 취하면 이상한 소리를 잘 하는 나를 알아서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그때에도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은 여전했었기 때문에 다음날 술이 깼음에도 불구하고 사귀는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레몬과의 관계는 지속되고 있었고 사단은 레몬의 일이 끝나고 같이 베뉴에 갔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너 얘랑 무슨 사이야?”

“각별한 사인데요 당신은요?”

“나 얘랑 사귀는데”     


하지만 레몬이도 따지고 보면 법적인 와이프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그 디제이도 화를 냈지만 내가 원래부터 술을 많이 마시고 다른데도 간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막상 그 둘의 분위기는 험악했겠지만 나는 그런 것 등은 상관 없었다. 그냥 그 상황이 재밌었다. 회사에선 내 의지대로 되는건 하나도 없는데 밖으로 나오면 나로 인해 사람들은 싸우고, 움직였다.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는게 좋아서 계속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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