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 되면 진급해야 할 시기는, 5년차에도 낙방이었다. 밤 10시까지 야근을 하고, 석식은 당연히 회사에서 먹는 일상은 계속되었지만, 삶은 그렇게 망가져만 갔다. 계속된 승진에 대한 열망과, 좌절은 사람을 심각하게 낙담하게 했다. 주말을 쪼개 다른곳에 쓴 입사지원서도 100개가 넘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고 최종까지 간 면접에서 또 낙방하자 자신감을 잃었다.
당시 하던 사업은 시스템평가 업무였는데,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기존 업무를 온라인으로 하는 업무였다. 시스템을 잘 알지도 못하고 한 업무여서 스트레스가 심했다. 일을 모르는데 누구 하나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 또한 누락되는게 있으면 그건 모두 내 책임이었다. 교수를 끼고 있는 용역이 있었지만, 그 용역 또한 평가항목만을 만들어 주는 곳이었고, 시스템과 조율은 내가 해야 했다. 게다가 200곳이 넘는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평가에 대한 민원업무도 받아내야 하는 사업이었다. 중요한 업무였지만, 스트레스가 심해서 어느날은 친구가 '어, 너 여기 머리가 없어' 라고 했다. 알고 보니 원형탈모였다. 자조의 심정으로 회사에 가서 그때 나 말고는 모두 무임승차자로 있던 팀 직원에게 '저 탈모래요'라고 허탈하게 말했지만, 동료들은 '어 진짜 머리가 없네?' 웃을 뿐이었다.
그때는 당직을 서고 있어서, 밤에 밥을 먹으러 가다가 어두워서 스토퍼를 보지 못하고 넘어진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아 좀 세게 넘어졌구나' 하고 당직일지에 '이상무'라고 적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 복부에 극심한 통증이 있었다. 한번도 골절된 적이 없어서 감히 골절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보스랑 같이 출장을 가다 '그날 넘어졌는데 아직까지 아파요'라고 말하자 '병원에 가보는게 좋겠다'라고 해서 외출을 쓰고 병원에 다녀왔다. 병원에선 뼈가 3개 골절되었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처리를 해야 해서 그날 당직일지에 해당 사건을 추가해서 썼다. 그러자 본부장은 내가 '공문서 위조'를 했다고 했다. 산재처리가 되면 경영평가 점수가 깎이기 때문이었다. 인센티브가 걸려있는 경영평가는 기관장의 유일한 관심사였고, 그 과정에서 점수가 깎일 여지는 제거해야만 했던 것이다. 근로자를 자산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회의감이 다시 엄습했다. 결국 근복은 현장평가에 와서 산재처리를 완료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떠난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