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는 추억이 많았다. 그와 함께 다녔던 결혼식, 혹은 국내의 처음 가보는 아름다운 장소들, 그와 함께한 자연 같은 것들은 함께 주말을 보내고 나면 월요일이 오는 게 지옥보다 싫을 정도로 달콤했다. 오히려 그런 순간들이 일상을 더욱 비루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와 갔었던 학회, 카레이싱을 하러 갔던 왜관, 그가 등산을 좋아해 산 꼭대기까지 올라오곤 했던 일, 혹은 계곡에 가서 발을 담그던 일 같은 것들은 평소에 내가 하던 것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처음 만나던 날 내게 '뭐 먹을래요'라고 묻는 그의 말의 떨림은 내게까지 전해져 왔다. 그만큼 사람이 맑았다. '송어 비빔밥요'라고 말하자 '소개팅 와서 송어비빔밥을 먹어보긴 처음이에요'라고 말하며 그는 웃었다. '보통은 파스타 같은 거 많이 먹으니까요'라고 말하며 그는 본인의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피아노를 좋아해요'라고 하자 그는 '저도요'라고 말하면서 대화의 봇물은 터졌다. 유약하고 따분해 보이는 첫인상이 오히려 호기심을 일으켰던 건, 내가 강하고 터프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만나던 날, 그의 지역으로 갔을 때 부러 입고 온 하얀 가운에 끌린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그런 소품이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보 같게도 나는 그것에 흔들렸다.
나는 팬시한 곳에 가서 허세를 부리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호텔에 가서 월급을 1/10 하면 나오는 금액을 한 번에 쓰고는 그 고급스러움에 찬사를 날리는 아이였고, 남들이 좋다는 와인은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마시곤 하는 애였다. 타인의 허세가 싫었지만, 내가 부리는 허세는 '직장생활에서 고생하는데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아?'라고 합리화하게 만들었다. 호텔의 멤버십 같은 걸 쉽게 결제하고 금액은 다음 달의 내게 넘겼다.
그는 순진했다. 공부를 잘해서 닥터가 되었지만, 세상 일에는 무지함에 가까웠다. 어느 날 그를 만나기로 해서 차를 끌고 우리 동네로 왔는데 그의 얼굴이 까맣고 굉장히 지쳐 보였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별거 아냐."
라고 얼버무리기에 '오늘 좀 피곤했겠거니'하고 식사 장소로 향했다. 당시 즐겨 보던 블로거가 이베리코 고기를 맛있다고 찬양하고 있어서 '그거 먹으러 가자'하고 식당으로 갔다. 식당 주인은 인당 2만 원의 금액으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찬을 올려주었다. 그것들이 모두 맛있어서 맛있게 식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오늘 내 계좌가 불법에 연루되었다는 거야."
"그래서?"
"통장에 들어있는 돈을 일단 그 사람한테 넘기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돌려준다고 했어"
"뭐? 그거 사기야"
"아냐. 직접 온 전화로 콜백 해서 직원과도 통화했고 맞다고 확인까지 했는걸"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그 또한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에 "그래? 그럼 그런가 보지"하고 대화를 마쳤다.
다음날 눈을 떴는데, 그가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수야. 이상해."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분명히 오늘 돌려준다고 했는데 계좌에 돈이 들어오지 않아."
"뭐?"
"그리고 어제 들어갔던 어플도 오늘 먹통이야. 뭔가 잘못된 거 같아."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는 경찰서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나는 황당해하고 있었다.
"같이 가줘."
그와 같이 갈 생각이 없었지만, 그가 너무 망연자실해 보여서 같이 가기로 했다.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했다. 경찰관은 찾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고 했다. 그때까진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겐 무한해 보이는 젊음이 있었고 그걸 소비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는 내 젊음을 함께 소비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미래를 그리거나 신뢰를 두텁게 한다는 건 거리가 멀었다. 사이버수사를 담당하는 직원은 경위를 듣더니 "너무 늦었어요."라고 했다. 난 뒤늦게 어제 그를 설득하지 못한 걸 후회했다. 하지만 가장 크게 아픈 건 그일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거의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평소의 유쾌하고 활달한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듯한 표정이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해서 나는 회사로 돌아왔다.
그는 수요일쯤 되었을 때 회사로 찾아왔다.
"수야. 나 네가 없으면 너무 힘들 거 같아. 옆에 있어줘"
라고 했을 때 나는 그가 불쌍했다. 정말 내가 없으면 뭔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알았어."
라고 했지만 그건 사랑도, 연민도 아니었다. 그냥, '시간을 같이 있어주는 것'이었다. 고난에 처한 그를 내칠 만큼 내가 모질지도 못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헤어져야 했다.
그와는 일 년 정도 더 만났다. 코로나가 터져서 그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 바빴다. 병원을 가는 만큼 추가수당이 나왔기 때문에, 그는 미친 듯이 일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잃어버린 돈을 회수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었다. 그는 가끔 넋이 나간 표정을 했다.
하루는 내가 주꾸미를 먹고 싶다고 해서 유명한 집에 갔다. 가기 전만 해도 샤부샤부를 먹을 생각에 나는 마냥 들떠있었다. 하지만 가는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때 즈음에는 뭘 할 때도 한구석엔 우울함이 보여서,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만날 때마다 그런 걸 보는 것도 곤욕이었다. 그도 노력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나랑 함께 있는 순간순간마다 불현듯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을 떨쳐내기도 쉽지 않은 것이었다. 물건 하나만 없어져도 끊임없이 생각이 나는 게 인간인데, 거의 10달을 벌어야 회수할 수 있는 돈을 한 번에 잃은 것이었다. 심지어 그게 본인돈도 아닌, 여유롭게 살기 위해서 대출을 받은 돈이었다. 통탄할 노릇이었다.
내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삶을 포기할 정도로 혼이 나가 있었겠지만, 그는 그나마 고소득이라서 그 돈을 빠른 시간 안에 회수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물론 돈을 빼앗아간 그들이 나쁜 사람이지만, 속은 그도 탐탁지 않아 보였다. 내가 그 상황이라도 그 수법에 당할 만큼, 정교하게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람들이 '주위 사람에게 말하면 수사에 비협조적일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그대로 믿고 반나절이 지나서야 내게 말한 그도 답답했다. 하지만 가장 미칠 거 같은 건 그였을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벌에 최고 권위를 가진 직업을 가진 그였지만, 그렇게 속은 것에 대해 부모님께도 말을 못 하고 있는 속사정이었다. 나는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어떤 순간엔 이해를 못 하겠고 그랬다.
그가 내 곁에 있어달라고 했을 때, 국내의 아름다운 곳들을 다녔던 건 이제 잊힌 것 같지만 기억하려고 하면 문득 생각이 난다. 그냥, 새해 첫날에 산에 같이 가서 일출을 보고 앞에서 나눠주는 떡국을 먹은 것, 그나마 지방에 있는 아쿠아리움에 갔다가 물냄새에 질린 것, 해가 지는 때에 산에 가서 산책을 하고 호떡을 먹고 내려온 것,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시간을 소비한 것의 힘은 강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 최선조차 바보 같았다. 그를 만나느라 다른 사람을 알아볼 시간을 놓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