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선을 보라고 성화여서 고모가 사무장으로 데리고 있는 사람의 아들을 소개받았다. 그는 개원한 의사라고 했다. 알고보면 나도 그의 돈이 좋았던 거면서 거절당하자 견디기 힘들어 절에 갔다.
절에는 마침 밤을 새워하는 기도가 진행중이었다. 신도도 아닌사람이 나타나 절을 하며 우니 사람들은 '무슨 일 있어요?' 물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힘들었던 일을 말해주며 날 위로했다. 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기도는 새벽 5시까지 진행되었고, 주지스님도 기도를 하며 졸았다. 하지만 난 감정이 올라와서 잠이 오지도 않고 오히려 더욱 명징해졌다. 석가탑을 몇십바퀴 돌고 힘없이 차를 끌고 집에 와서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때 기도를 할때, 누군가의 옷깃자락이 스쳤는데 젊은 남승이었다. 난 그 이후로도 견디기가 힘들어 퇴근하면 절에 갔다.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그냥 몇시간씩 앉아 있다 오곤 했다. 그러다가 기도를 하는 여승을 만나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녀는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스님이 되었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자 '내가 의사라면 측은지심이 먼저 들었을거 같은데요'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내가 위안받을 곳은 종교라고 생각했다.
여승은 어떤 노승이 자신의 아이를 낳아주면 10억을 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들 또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에 일요일에 성전을 꽉 채운 사람들이 의미없게 느껴졌다. 결국 종교도 장산데, 그런 종교라도 믿지 않으면 버틸 수 없어 이 세상의 수많은 신도들은 존재하는 것인가. 그녀는 날 볼때마다 힘들다고 했다. 속세의 것을 볼때면 은연중에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들이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거리두기에 씁쓸해할 무렵, 나와 나이가 비슷한 남승이 있는데 사주를 볼 줄 안다며 소개해 주었다.
그는 새벽예배를 드릴때 옷깃을 스쳐 지나갔던 그 사람이었다. 나와는 마침 사주의 일주가 같은 사람이었다. 승복을 입은 그에게는 땀냄새가 났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했지만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다만 책 이야기를 하면서 빌려줄수 있겠냐고 했더니 10권이 넘는 책을 빌려주었다.
그날 이후로 퇴근 후 그를 자주 만났다.
'출가한다고 했을때 어머니가 뭐라 안하시던가요'
'슬퍼했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 또한 휴가가 있어서 일년에 몇번 본가에 다녀온다고 했다. 신도들이 가져온 복숭아나 먹을 것들을 챙겨주었다. 여승이 소개해줄때 연락처를 교환하라고 강요했는데, 그 이후로 오는 잦은 연락도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나와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했다. 본인도 차가 있다며 같이 좋은델 가자고 했지만 나는 승복을 입은 그와 좋은 곳을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그가 연락을 해도 응답하지 않았다. 연락은 얼마간 계속되었지만, 계속된 무응답에 그도 눈치를 채고 어느순간부터는 연락하지 않았다. 그들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 사람에게 갖는 관심은 어쩔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길 또한 그가 선택한 길이었다. 날 위해 기도해달라고 말했지만, 결국 나는 속세의 이기적인 한 사람인 것이었다. 내가 욕심이 많은 것 때문에 힘들어할때, 그는 욕심이 많은게 잘못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욕심이 버겁다. 더 많은 돈, 좋은 집 뒤에는 끝없는 굴레일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