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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Apr 09. 2024

미루는 사람들

인사이동한지 한달이 되었다.


업무분장을 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업무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자리를 옮기면서 기존에 내가 하던 업무까지 하라고 하자 열이 올랐다.


"이거 저희가 예산도 없고 인력도 없고 못합니다."


하지만 전실장 또한 만년 하위 평가를 받는 해당 사업을 받고 싶지 않았다.

"업무분장하면서 넘어간 일이에요. 작년에 한 경험이 있으니 올해도 하세요"

"그렇다면 전 해당 업무에 있는 용역 업무만 하겠습니다. 인식 제고나 교육 등을 할 여력이 없습니다"


큰소릴 내면서 주장하자 다음날 본부장은 타실로 조정해 주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시련은 닥쳐왔다. 정보화총괄 업무를 예전에 했었고 교육도 받았기 때문에 나보고 하라고 했다. 하기 싫었지만, 팀내에 할수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것 같아 보였다. 어쩔수 없이 내게 왔다.


하지만, 타 팀에서 작년에 정산되지 못한 업무를 하라는 것까지 오자 반발했다. 이월돼서 3월까지 연장되어 온 업무는 내게 왔다. 


"할 수 없습니다"

"이거 행정처리만 하면 돼"

"전임자도 미뤄온 업무를 제가 하라고요? 못합니다."


회의테이블에서 보스를 받아치며 못하겠다고 했으나, 결국 내 업무가 되었다. 


3월은 바빴다. 숫자를 계속 확인해야 했고, 협의회부터 후속조치까지 숨쉬지 않고 달려왔다. 이제 막 숨 고르려는 순간, 이월 사업의 행정처리를 하라고 한 것이었다.


'와..진짜 인간 막굴리는구나.'


알량한 월급을 주면서 사람을 있는대로 부려먹는 회사에 이골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조직 차원에서의 분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업체로부터 공문을 받고 검수작업을 하는 일이었지만, 공문 접수부터 삐끗거렸다.


결과보고서엔 들어가지 않아야 할 양식조차 포함이 되어있었고, 이는 이전 실장이 지시했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어서 업체 대표한테 삭제하라고 해서 겨우 받는 작업이 일주일 걸렸다. 그 이후에는 보스가 검수를 하라고 했다. 말이 검수지 산출물을 점검하고 문서를 만들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하기싫은 문서를 억지로 작성해서 사인을 받으려는 순간 보스는 말했다.


"이거 왜 우리가 해 그쪽보고 작성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쪽보고 작성하라고 한게 오늘 아침이었다. 참조를 걸어 보냈더니 해당 담당 실장이 왔다.


"검수조서를 (이제 나한테 넘어왔는데) 왜 우리한테 주는거죠?"

"그럼 제가 해야 하나요? 인계받을 때 행정처리만 하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작성은 (내가 하고) 사인만 해주면 되는줄 알았는데요"

"사업내용과 산출물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합니까"


해당 실장은 잠시 자리로 돌아가더니 한시간 뒤에 담당자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이번엔 보스한테였다.


"분장해서 넘어간걸 검수조서를 왜 우리보고 작성하라고 하는거죠?"

담당자는 톤이 올라간 목소리로 말했다. 

"인계받을때 행정처리만 하겠다고 했고, 사업내용을 모르는데 조서를 어떻게 씁니까"

"그거 간단히 작성하면 되는걸 왜 우리가 합니까"

"그럼 간단한걸 왜 저희가 하죠?"


라며 또 큰소리가 오갔다. 난 해당내용을 옆에서 듣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행정처리만 하니 검수조서 작성해서 주세요"

로 결론이 났다. 두 사람은 돌아갔다.


예전에는 하물며 업무를 내게 떠밀고는 타팀이 왔을때 하나도 쉴드쳐주지 못한 보스랑 일한적도 있었다. 그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은 보스가 쉴드쳐준 날이었다. 내게 일을 줄때면 악마같지만, 그래도 오늘같이 등돌리지 않은 날에는 그래도 좀 회사생활 할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일 떠밀기의 달인인 고인물 직원들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진다. 난 하루에도 몇번씩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일한다. 이건 하나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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