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글을 쓰려다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난 글이 안 써지면 긴 호흡의 영화를 보거나 피아노를 친다. 프렌치토스트를 먹고 음악을 들었다. 서정적인 음악은 들을 때마다 마음을 아프게 한다. 들었던 음악 중에 앙드레가뇽의 녹턴이 좋아서 악보를 출력하러 갔다.
갔더니 '이쪽은 프린트가 안 돼서요, 여기서 하세요' 라길래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사운드하운드로 찾았던 음악을 일일이 검색하고, 없을 시엔 유료 악보사이트에 가서 출력을 하는 지난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출력을 할 때 말해달라고 했는데 그냥 출력을 눌렀더니 '이쪽엔 고급용지가 나와서요' 라며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서 한꺼번에 서치 했더니 약 10개 정도의 악보를 찾았다.
원래 제본까지 하려고 했는데 '이제 나가봐야 해서요'라는 말에 출력을 한꺼번에 걸었다. 다 출력해도 28백 원밖에 되지 않았다. 백원인 악보도 있어 횡재한 느낌이었다. 마치 다이소에 가서 마구 쇼핑을 했는데 만원 나온 기분이었다. 사장님이 약속만 없었으면 한 시간을 더 뻐겼을 텐데 주차정산을 하고 나왔다.
바흐 프렐류드 악보를 치며 슬퍼지고 말았다. 이 음악은 들을 때도 그렇고 연주할 때도 가라앉고 만다. 내가 좋아하는 스티브맥퀸 감독의 셰임에도 배경음악으로 나와서 좋아한다. 나는 바흐를 들으면 안정적이 되지만 삶의 유한성에 비통해진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게 했는데, 난 연주할 때마다 내게 피아노를 배우게끔 한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어머니는 삶이 많은 순간 지루함과 권태인걸 알아서 음악을 배우게 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청소년일 때 '나도 피아노 알려줘라' 라며 피아노 앞에 앉기도 했지만, 그럴 때 어린 나는 엄마 옆에 앉아서 '아니 엄마, 그게 아니고 이거잖아'라고 화를 내곤 했었다. 피아노를 한 번도 쳐보지 못한 엄마가 못 치는 건 당연한데 말이다. 어머닌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 그 뒤로 내게 피아노 가르쳐 달란 말은 하지 않았다.
난 평소에 특정순간에 내 예민함이 불거져 나오는 게 싫었는데, 피아노가 업이었다면 더 예민해지지 못함에 슬퍼했을 수도 있겠지. 난 회사원이라 피아니스트가 부럽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미스터치를 했을 때의 자괴감은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음대입시를 반대했던 부모님을 원망하면서도, 그 길이 얼마나 고플 줄 아니까 애써 수능입시로 틀게 한건 사랑이었던가 난 매 순간 오락가락한다.
아무런 해야 하는 일도 없고 누굴 만나야 하는 일도 없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날이었지만 '아무도 날 찾지 않고' 피아노만 치니까 좀 외로워지고 말았다. 하지만 내게 딱 이주만 무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좋아하는 곡을 연습하고 스몰토크를 안 해도 되는 혼밥을 즐길 것이다. 돈을 벌지 않아도 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