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니면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중 특별한 인연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4년 전이었다. 나는 갑질하는 팀장과 같이 일하고 있었다. 기안하면 10번을 반려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스타일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부문장께 업무의 고충을 말하면, 그는 '내가 봤을땐 안그런거 같던데' 했지만, 원래 그런 악랄한 사람들은 강강약약이다. 그리고 부문장도 그런걸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팀장은 본인은 대접받길 원하면서 부문장에게는 그렇지 않은 이중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출장을 갈 일이 있을땐 본인은 빠지고 내가 부문장을 모시고 가라고 했다.
이전 부문장은 사내 평판에 휘둘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권력에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그들의 모습에 학을 떼고 고고한척 거리를 뒀었다. 내 회사 평판이 '자존심만 쎄고 일은 못하는 애'로 낙인찍혀 있을때 지금 부문장은 나를 나 자체로 봐줬다. 그런 인간적인 모습에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부문장과 간 제주도 출장은 마음이 편했다. 일반 상사들이 원하는 의전과 과도한 허례허식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애초부터, 그런걸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가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제주에서 기관의 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출장을 가서도 저녁시간은 그 사람들과 보내겠다고 했다. 직원 입장으로서는 부담이 덜한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출장을 회사사람과 같이 가면 근무시간 외까지 챙겨야 하는게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와 현장평가를 끝내고 제주의 바다를 보는데 '출장가면 다른건 기억에 안남지만, 어디서 뭘 먹고 그런 것들은 기억이 난다'며 결국 기억에 남는건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소탈하고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은 '이런 사람이라면 같이 회사생활을 할 만 하다'고 느끼게 했다.
그는 귀촌생활을 했는데, 한번씩 직원을 집에 불러 바베큐 파티를 열기도 하는 인정있는 사람이었다. 직원들과의 술자리는 늦게까지 이어졌고, 사모님은 계속해서 안주를 마련해 주었다. 다 같이 먹고 나선 불멍을 하고 직원들끼리 뒷산 산책을 다녀왔다. 날이 어두웠지만 각 식물을 설명해주는 그의 모습과, 밤하늘에 떠있는 별 같은 건 시간이 지나도 뇌리에 남아있다.
그가 퇴직을 하고 난 후, 나는 미국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오퍼레터를 받던날 연락을 했다.
"부문장님, 저 미국 가요."
라고 하니 자식이 모두 캐나다에 가 있는 그는 "결혼식이 있는데 끝나고 보자"고 했다. 그는 금강에서 응원한다고 했다. 지난 나의 회사 생활에 대한 회의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 또한 30여년간의 회사생활동안 그런걸 경험한 사람이었다. 회사에 너무 몰입하지 말고 가끔은 지사를 옮기기도 하면서 지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고지식하지 않은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미국으로 가는 건 취소되었고, 그 이후 '잘 지내요? 생각보다 무료하네' 라고 온 한 달 뒤쯤의 문자는 자의였던가 타의였던가 답장하지 못한채 시간은 지나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 동료에서 연락이 왔다.
'부문장님 암이래요'
그 소식에 놀라 연락을 했다. '괜찮으세요? 한번 갈게요' 라고 했더니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를 위해 컵을 만들었었다. 부문장님, 존경합니다 라고 쓴 카네이션 컵이 아직 집에 포장된채로 있었다.
그러던 사이 일년이 지났다. 소천하셨다고 했다.
뵐 수 있을때 봐야 하는데, 그때 갔어야 했는데 지금에서야 후회하는 나에 대한 죄책감이 휘감는다. 영원할 수 없는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