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아 Apr 17. 2024

주지 못한 컵

상사가 말했다.


"어제 같이 못 가서 미안해. 정이가 같이 가자고 하는 바람에"

"괜찮아요"



장례식장에는 점심시간에 가려고 마음먹었다. 가뜩 가라앉은 맘에 밤에 운전하면 더 슬플 것 같아서다. 가는 길은 도로에 차가 하나도 없고 내차밖에 없었다. 부문장님이 나를 환대하는 길 같았다. 완연한 봄이었다. 초목이 연둣빛을 띄고 있었다. 그 흩뿌려놓은 듯한 유화물감빛이 눈이 부셨다. 마음은 비애로 가득 찼는데 날씨가 화창하니 부조리극의 한 장면 같았다. 


식장까지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였다. 고깔콘을 따라가니 장례식장이 덩그러니 있었다. 지갑에서 현금을 챙겨 봉투에 넣었다. 부의봉투를 가져온다는 게 깜빡해서 은행봉투에 넣었다. 부문장님이 이 정도는 이해해 주실 것 같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화환이 줄지어 있었다. 30년 이상을 공직에서 근무하신 분의 화환은 이 정도 개수구나 하며 들어갔다. 옷이 단정해 보이지 않을 거 같아 맨투맨을 벗고 슬랙스에 셔츠를 넣어 입었다. 식장 특유의 무채색 톤과 채도 낮은 음울한 분위기가 공간을 휘감고 있었다. 


앞에 먼저 온 무리는 상주와 인사를 나누었다. 손이 황망해서 갈 곳을 잃었다가 방명록에 이름을 작성했다. 봉투를 넣고 인사를 하려고 부문장님 사진을 봤는데 너무 포샵을 많이 한 것 같았다. 그래도 잘생기신 분이었으니까. 쌍꺼풀수술을 해 부리부리해진 눈매가 강조돼 보였다. 하지만 그 또렷함에 눈앞이 흐릿해졌다. 일 년 전에 대화를 나눴던 부문장님은 이제 이 세계엔 없는 것이다. 국화를 한송이 올리는 순간에 삶의 유한성에 가슴이 아득해져 왔다. 사모님이 앞선 무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어서 빠르게 인사하고 식탁에 앉았다. 안 울려고 했는데 영정사진을 보니까 그제야 실감이 나는 것 같아서 힘없이 의자에 앉으니 사모님이 옆자리로 왔다. 




"제가 부문장님 드리려고 컵을 샀는데 이걸 못주고 부문장님이.. 부문장님이.."

말을 맺지 못하고 바비큐파티 때 끊임없이 고기를 굽던 사모님을 보자 눈물은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그건 막을 수 없는 둑과 같았다. 그럴 때 상대방이 피에로같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으면 울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사이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그녀를 보자 그간의 고생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주체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내가 그 컵 전해줄게요." 애꿎게도, 모든 걸 다 포용하는 듯한 그녀의 말은 마치 넘어졌을 때 걱정하는 말을 들으면 더 크게 울게 되는 것처럼 어린아이 같이 엉엉 울게 만들었다.


직원은 내 몰골을 보며 "몇 분이세요? 한분이세요?"를 사모님께 눈대중으로 묻고는 무심하게 한상을 놓아주고 갔다. 회사로고가 젓가락에 박혀 있었다. 종이를 찢고는 젓가락으로 밥을 조각내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이렇게 오열하면 밥이 안 들어가야 할거 같은데 목구멍은 끄덕끄덕 넘어갔다. 그렇게 먹고 있으니까 부문장님의 아들딸이 왔다. 캐나다 이민을 했다는 그와 그녀는 상중이라 잠깐 들어온 것 같았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차별 없이 대해주는 분이셨어요." 그보다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막상 생각나는 말은 이뿐이었다. 

"아버지가 회사얘긴 잘 안 해주셔서 회사에서 어떤 분인지 모르거든요" 하며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치료는 안 하신 건가요?"

"예 가능성이 워낙 낮다 보니까.. 아버지 성격 아시잖아요. 본인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실행하시는 거. 판정받고 건강해지려고 한동안 운동도 열심히 하고 그러셨는데 얼마 전부터 눈에 띄게 수척해지시더라고요."

그렇지. 부문장님은 강단 있는 사람이었지.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버지가 평생을 공직에 지내셨는데 막상 농사는 잘 못 지으셨어요"


라며 그는 웃었다. 그의 힘없는 웃음에 나도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난 계속 음식물을 씹어 넘기고 있었고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자 그는 "그럼 드세요" 하고 자리를 떴다.


식장에 오면 부문장님께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부탁드리고 싶은 것들도 많았는데 운동화를 구겨 신고 나오면서 그런 말들은 마음속으로 삼켰다. 


"잘 가요" 

"예"


 눈이 부시게 찬란한 날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상사의 죽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