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안 세우는 게 있어서 상위에 컨펌을 요청했더니 거의 2주를 뭉개고 있다.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상위기관 내 토스한 부서에서 확답이 안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상위기관이 지시한 부서한테 물어보니 그런 지시를 받은 적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상위에 확인해 보니 그때까지 자리를 비우고 있던 담당은 '그쪽 부서에서 상위한테 내용받아서 우리한테 주라고 하세요'라고 한다. 본인이 할 수도 있는걸 손대기 싫어서다. 하지만 옆부서의 상위는 '예산 늘어나는 건 못하겠으니 너네가 알아서 해라'이다.
부서 이기주의가 하늘을 찌른다. 결국 붕 뜬 예산은 내가 해결방안을 알아봐야 했다. 내가 하는 사업에 예산을 더 태울수도 있었지만, 굳이 필요 없는 만족도조사 같은 데에 쓰기는 싫었다. 작년에도 쓸데없는 웹진을 만들었는데, 그건 우리 본부가 예산 더 쓰겠다고 작년에 굳이 뺏어왔다가 올해 그 뺏어온 예산이 붕 떠서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이미 연초에 내 사업에는 주어진 예산만 쓰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더 쓰는 것도 불가하다. 하지만 작년에는 예산을 더 써도 되는 게 안 되는 건지 모르고 썼던 게 올해 문제가 되었다. 결국 붕 뜬 예산은 기관 내 다른 팀에 전달해서 해결하기로 했다. 회사를 다니면 하루하루 쌈닭이 되어간다. 담당자에게 안 먹히면 바로 보스로 가서 질러버린다. 화내고 싶지 않은데 성질이 나게 된다.
좋은 관계 유지하기 그런 건 모르겠다. 승진 이런 것도 결국 누가 결정권자랑 술을 더 자주 먹거나, 뭔갈 갖다 바치거나 그런 걸로 결정되는 것도 코웃음이 난다. 이 작은 기관에서 올라가면 얼마나 올라간다고, 그리고 올라갈 수 있는 한계도 CEO까지도 아닌데 비위 맞추고 그런 거 보면 학을 뗀다. 의사결정권자가 되면? 게임하고 담배 피우고 사무실 용품 갖다 쓰고 업추비 쓰고 가십거리 찾아다니는 게 그들의 일이다. 회사 내 많은 일들이 빅마우스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말이 적거나 사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의 발언에 의해 그렇다고 판정된다. 나는 말하는 게 싫다. 사내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스타일은 아니다. 뻔한 연예인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허무감이 싫다. 대신 자유와 고독의 가치를 숭상한다. 그게 아직 결혼 안 한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회사에 다녀야 하는 걸까. 나는 6펜스에 대한 이야기 말고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회사는 그런 이상만 좇을 수 없으니 현실에 발을 닿기 위해 다니는 거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거미줄에 묶여있어 꼼짝달싹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제 같은 날엔 퇴근해서 잠을 12시간 잘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