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0억을 쓴다. 근데 내 사업엔 8억만 써야 한다. 2억은 나눠줘야 한다. 근데 나눠줘야 하는 부서에선 1억 5천만 쓸 수 있다고 했다.
" 예산을 나눠주시면 안 될까요.”
"그걸 왜 제가 하죠? 방안을 마련해서 알려주세요" 상위가 말했다.
타 부서가 쓰기로 협의를 끝내놓았다. 오늘 계획안을 수정해서 보냈더니 얼마 안 있다 전화가 왔다.
"오천만 원이 어떻게 된 거예요?"
"작년에 2억짜리 사업이 폐지되면서 1억 오천을 쓰는 바람에 5천이 남았습니다. 그 5천을 작년엔 웹진에 썼는데 올해는 실효성이 없어 쓰지 않을 계획입니다. 그래서 타 부서에서 쓰는 걸로 정리했습니다."
"안 돼요. 8억과 2억으로 나누어져야 하고, 타 부서엔 주면 안 되며 과장(나)이나 마 부장이 써야 합니다"
결국 어제는 나보고 방안을 마련하랬다가, 오늘 (그가) 예산서를 살펴보니 내가 타 부서에 협조를 구하지 않아도 될 사안이었는데 본인이 체크 못해서 일을 벌여놓고 내 보스에게 전화를 한다.
"10억 우리가 다 써야 된대."
"그거 어제 말했으면 타 부서에 협조 안 구해도 됐었는데, 저한테 말하기 그래서 보스한테 전화한 거잖아요."
"실수잖아. 뭐 쓸 거 없을까?"
"근데 저희는 8억만 써야 하잖아요."
"그렇지.. 근데 또 마 부장은 1억 5천도 다 못쓰겠대. 작년에도 남았다고."
"생각해 볼게요. 근데 타 부서에 미안하게 된 거잖아요"
"잘 말해야지"
라고 그는 말했지만 결국 수습은 내가 해야 한다.
5천 가지고 홍보물제작이나 다른 걸로 '태울'수는 있지만 쓸데없는 거에 쓰면 안 되는 것이다. 작년에 5천도 부문장이 본인 아는 업체에게 넘겨주려고 하다가 결국엔 그렇게 안되었지만, 어차피 내가 주려고 했던 타 부서는 예산이 깎인 참이라 그쪽에 준다고 하면 깔끔하게 정리될 걸 누군가의 고집으로 인해 무산되고 만 것이다.
까라고 해서 깠더니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게 싫다. 이런 일은 숱하게 있어왔다. 똥 밟았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지만 이걸 10년을 더해야 된다고?(난 10년 뒤 은퇴하는 게 꿈이다.)
사실 오전부터 기분이 안 좋았었다. 내 소개로 결혼하게 된 회사후배가 있다. 그녀는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근데 청첩장을 (나와 사이가 안 좋은) 김팀장에게 만나서 준다고 했다.
김팀장이 나와 사이가 안 좋은 이유는 그와 내가 같은 부서에서 일했을 때, 짬이 얼마 안 되는 내게 일을 떠넘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나는 부서장이었던 이보스에게 소리 질렀다. "그건 제 업무 아니잖아요"
사실상 김팀장이 선배지만 이보스 아래에 있었고, 그 둘은 같은 지역 사람이었다. 예우 같은 게 존재했다. 결국 나는 그 둘한테 찍혀 다른 부서로 재발령 되었다.
하지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이보스와는 추후 3년을 같이 더 일했으며, 그 3년이란 기간 후에 타 부서로 옮기게 되었는데 거기서 빌런보스를 만났다. 그는 갑질의 대명사였다.
빌런보스의 회식자리에서의 폭언, 볼펜 던지기를 견디지 못해 직장 내 갑질로 신고했을 때, 김팀장이 감사실에 근무하고 있었다. 신고하면 그는 볼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하지만 증거불충분이라고 했다. 녹음과 직장동료의 증언, 메신저 기록까지 모두 제출했지만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무산되었다. 그런 이유는 빌런보스와 김팀장 또한 동향이었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地지연 같은 것들. 이를 갈았지만 빌런보스가 좌천되고 난 후에도 김팀장은 부서장으로 잘 지내고 있다. 불의에 눈감는 자들 지겹도록 봤지만 김팀장은 이번에 결혼하는 그 후배와도 동향이라 지속적으로 인연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결혼한다는 직장후배에게 지인을 소개해 준 것도 후회한다. 그녀는 내가 아니었음 그만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을 만나지도 못할 사람이다. 그녀가 준 삼십만 원이란 소개비도, 내가 김팀장을 싫어하는 걸 알면서 사이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