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에 대한 염증은 커져간다. 멍하니 있다 보면 지금처럼 10년이 지나있을까 봐 두렵다. 품질진단 평가위원으로 온 교수는 말했다.
"저도 직장 생활하다가 마케팅 석사하고 박사는 경영학으로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말한 석사는 내 학부 대학이었다. 반갑다고 했더니 그는 말했다.
"최근엔 석박통합이 있으니 한번 고려해 보는 건 어때요?"
대학원에 갈 생각을 예전부터 안 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까지 가는 건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무리였다. 중요한 건 내가 뭘 공부할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경영을 전공했는데 재미가 없었다. 학문이 재미가 없는 건지, 그걸 가르치는 사람이 재미가 없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었다. 난 가르치는 사람이 좋으면 해당 공부도 좋아하게 되는 타입의 사람이다. 하지만 학부 때는 그런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히 학점은 바닥을 기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박사학위에 대한 필요는 커져갔다. 박사를 한다고 월급을 더 받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더 많은 커리어에 대한 기회가 있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논문을 쓰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들었다.
어제 조퇴를 하고 간 석사설명회는 많은 학생들이 콜로세움 강의장에 모여 있었다. 좀 늦어서 빈자리를 찾았다 앉았더니 교수를 위해 마련해 놓은 자리의 뒷좌석에 앉게 되었다. 교수들은 학과 소개를 시작했다.
경영경제학 교수는 석사로 경제학을 공부하면 박사로 무엇을 하든 도움이 된다는 포문을 열었다. 다음으론 조직 및 전략교수는 기업의 의사결정에서 어떤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하는지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학부 때 조직행동론은 망했는데 지금 설명하는 교수는 너드미가 있어서 흥미가 갔다. 로봇같이 말하는데 위트가 있어서 만약 공부를 하게 된다면 이 분야에서 하게 될 거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마케팅교수는 역시나 미국박사를 한 사람이었는데, 사실 오늘 온 교수가 대부분 박사를 미국에서 했다. 나도 공부를 한다면 박사는 미국에서 하고 싶다. 하지만 하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갔던 대사관 면접에서 내게 따지듯이 묻던 그 여자가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 IT경영은 지금 회사 직무랑 연관 지어 생각하면 가장 필요하고 가야 하는 분야인데 왜인지 잘 안 내킨다. 유망하단 건 알고 있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삶을 그렇게 살아왔다. 내게 맞는 것보단 사회에 필요하니까, 이런 마인드였다. 물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원하는 걸 찾는 게 더 맞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머리가 아팠다. 분명 좋아하진 않는데 필요하다. 이젠 결정을 내려야 할 때인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분명 나보다 뛰어나지 않은 상사 밑에서 일하는 건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지만, 공부로 고통스럽고 싶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