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파탄자에겐 맞불작전

by 강아

곧 있으면 퇴근이었다. 금요일이어서 사무실은 조용했다. 다들 주말 계획을 세우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화가 왔다. 유선상의 그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공고 나간 건 관련인데요"

최근 7억짜리 사업을 발주했고 사전규격공고가 저번주에 나간 상황이었다. 사업기간이 하반기에 불과했기 때문에 많은 업체가 몰렸다. 사업설명회에도 5개가 넘는 업체가 왔을 만큼 열기가 대단했다. 오늘은 본공고가 나가고 2번째 날이었다.


"왜 공동수급이 안 되는 거죠?"


작년에 공동수급이 가능하게 열어두었으나, 결국 선정된 업체는 단독수급이었다. 재작년 업체는 공동으로 들어왔다가 과업관리가 안되고 엉망으로 일을 해두고 나간 참이었다. 푸닥거리를 하느라 세월을 보내고 나서, 올해는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단독공고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사전규격이 나가고 난 후 의견 없음으로 본공고가 나간 상황이었다.


사전 때 (공동이 가능하게끔) 의견을 주었으면 반영될 수 있었다. 낮은 데시벨로 말하고 있는 나에 비해 상대방의 어투는 우악스럽고 화가 나 있었다. 그런 감정적인 어투에 (평소에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 감정도 올라가기 마련이었다. 서둘러 나라장터의 사전규격공고를 확인했다. 하지만 단독수급이라는 말을 확인할 수 없었다. 본공고에는 단독수급이 보였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르게 반영되는 걸 지난 십 년간 겪어와서 계약 담당자를 믿을 수 없었다. (담당자의 실수로) 사전 때 단독수급을 명시하지 않았다가 본공고 때만 명시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내 책임소재가 될 수 있는 문제였다.




"아니, 작년까지 공동이 가능했던 걸 왜 단독으로 해놓은 거죠? 그리고 사업 기간도 긴급으로 해서 10일밖에 없잖아요. 본인이 바쁘다고 긴급으로 해서 올려놓으면 업체는 준비기간이 반으로 줄어든 거잖아요"

"작년까지 그렇게 했다고 해서 올해도 그렇게 해야 하나요? 그리고 사업이 언제 마무리되는지는 알고 계세요? "

"모르는데요."



"잠깐만요. 녹음하겠습니다." 그는 텀을 두고 말했다.


"하세요. 저도 녹음해도 될까요?"


전화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휴대폰 녹음은 한적 있지만 회사전화의 녹음은 사실해본 적이 없었다. 녹음 버튼을 눌렀지만 제대로 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경한 그의 태도에 나도 질 수 없었고 실제로 잘못한 것도 없었다.


"3월에 종료돼요. 로데이 터를 익년 3월에 받기 때문에 사업 완료하고 추진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서둘러서 공고를 낸 게 지금이에요. 그럼 업체가 선정되는 시점이 7월인데 그럼 또 실질적으로 사업 수행 기간이 5개월밖에 되지 않아요. 7억짜리 사업이요. 한 달에 1억이 넘게 들어가는 사업인데 일정이 밀리다 보면 작년 같은 경우 RFP상 수행기간이 4개월밖에 되지 않아요. 그래서 올해 긴급발주한 게 문제가 되나요?"

"그러니까, 왜 공동을 단독으로 바꾼 거냐고요. 우리 같은 영세업체는 컨소로 들어가서 잘해보려고 했단 말입니다."



"전화주신 곳이 어디세요?"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발신자번호는 핸드폰 번호였다. 소속과 이름을 알아야 추후 대응이 가능했다. 몇 번이 곤 되물은 끝에 그는 낮아진 음성으로 대답했다.


"ooo니다"

"성함은요"

"oo요" 그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가 말한 업체명을 통화하는 사이에 인터넷으로 쳤다. 조사업체가 아닌 시설업체였다.




"대표님, 긴급으로 낸걸 뭐라고 하시면 사업기간이 짧게 된 게 제 책임이란 말씀이세요? 그리고 아까 오전에도 전화 주지 않으셨나요?"

"전화 안 했는데요."


나는 오전부터 걸려온 문의 전화에 답하고 있었고, 오전에도 왜 공동이 불가하냐는 전화를 받았었다. 직원을 시켜 물어보고 난 다음에 답변이 바뀌지 않으니까 다시 걸었을 거란 짐작이었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전화 안 했다니까요"

그는 내 실수에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예 그럼 그건 사과드려요. 근데 대표님 아까부터 계속 똑같은 질문을 하시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왜 자꾸 화내시는 거예요"

"화를 낸 게 아니에요. 목소리가 원래 이럽니다. 그리고 목소리 좀 크게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목소리가 하나도 안 들려요."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사무실내 언성을 높이며 말하고 있는 나의 목소리밖에 안 들릴 거란 상황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동일한 질문은 계속되고 있었고 수화기를 30분째 붙들고 있는 중이었다. 계속 통화하다간 퇴근할 때까지 할 거 같아서 말했다.


"제가 변경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전화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사전규격공고를 자세히 보니 단독으로 나가있었고 본공고도 단독으로 나가있었다. "난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사람이군" 다시금 확인하고 나서 보스에게 보고했다.


"이런 전화가 왔는데 계약부서에 확인한 결과 제가 요청하면 공동으로 변경할 수 있고 대신 공고기간이 5일 늘어납니다. 형평성 문제 때문에 공고를 열어주고 싶지 않지만 악성민원이 우려되어 공동이 가능하게 하는 게 어떨까요?"


안전주의자라고 생각했던 그는 원칙주의자였다.

"절차상 사전이었다면 반영할 수 있는데, 본공고가 나간 상황에서 변경기안 올리면 본부장한텐 뭐라고 그럴 건데. 한번 그런다고 바꿔주면 앞으로 계속 그런다. 계약에선 뭐라고 그러는데"

"오전에 민원인이 계약에 전화를 했다가 사업부서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제게 전화가 온 겁니다. 요청하면 변경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안된다고 해."


그는 호기롭게 말했다. 다시 전화를 했다. 전화번호를 찾다가 엉뚱한 곳에 전화를 해서 대표번호로 전화했더니 직원이 받았다.


"사장님 바꿔주세요"

그녀는 잠시만요, 하더니 연결이 되지 않아 "휴대폰 번호 알려드려도 될까요?"라며 번호를 알려주었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는 아까와 달리 안정되어 있었다.


"확인해 봤는데 불가하다고 합니다. 사전 때 말씀해 주셨으면 반영이 가능한데 이미 공고가 나간 상황이어서요."

"알겠습니다. 제가 이 건에 대해 이의제기해도 될까요?"

"그거에 대해선 제가 뭐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죠."




그러자 삼십 분 뒤에 직원이 내 책상으로 왔다. 얼굴은 알지만 교류가 없는 직원이었다. 그가 인사부서에 있는 줄 알고 '왜 왔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스와 난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화가 왔어요. 걸핏하면 감사원에 민원 넣을 거 같던데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상황을 말했더니 직원은 "이해는 되네요"하며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민원 넣으면 어쩔 수 없지. 확인서 하나 쓰지 뭐"라고 말하는 보스는 대수롭지 않은 척 센 척을 했다. 나야말로 경위서 쓰는 건 두렵지 않았다. 내가 화가 나는 건 담당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본인의 의견만을 관철하려는 낯선 사람의 몰상식한 태도였다. 상대방의 성별에 따라 태도를 급선회하던 과거의 타인들 때문에, 그가 실제로 성차별적인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런 편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태도는 그가 말하는 언행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50대 본인 사업체를 가진 편향된 사람인 것이다. 본인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살아오며 은연중의 특혜를 받아와서 억지를 부리면 '그런 게'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 난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욕지기가 들었다.


보스는 확인서를 쓸 것같이 말하더니 계약법을 찾아보고 있었다.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공동을 열어놔야 하는데, 해당 사유가 '품질'때문이 가능한지 나를 부르더니 '안된다고 하라'는 (자기) 발언을 의심하고 있었다.


"근데 전화할 때 말은 좀 예쁘게 해"

라고 그는 말했다.

"제가 얼마나 정중하게 말했는데요. 녹음한 거 들어보실래요?"

"그래야겠다" 하더니 그는 녹음을 확인하러 갔다.


화장실에 다녀오던 중 보안담당자와 감사실 담당자와 함께 제한구역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았다.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그가 실제로 통화내용을 듣고 올 때까지 기다릴 요량이었다. 그는 통화내용을 찾기 위해 민원인과 통화한 내용뿐만이 아닌 '업무상 관계자'들과 통화한 내용까지 들을 것이다. 두려운 건 없었다. 오히려 내용을 듣고 오면 오해한걸 미안해할 것이다. 누군가가 날 믿지 않는 상황은 수없이 겪었다. 이제는 그런 게 디폴트인걸 알기 때문에 서운하진 않다.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좀 그렇다. 이해받고 싶단 생각은 애초에 버렸지만 또 월요일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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