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때 명확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인 적은 없다. 살다 보면 '어디나 가볼까'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고 그런 목적이 생기면 어김없이 가게 됐다. 얼마 전부터 바다가 보고 싶었다. 회사일을 처리하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 항상 그런 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우연히 글쓰기와 지자체지원프로그램이 결합된 게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신청했다. 신청한 시점은 3월이었다. 그때는 끊임없이 숫자를 확인하고 검수하는 일로 지쳐있었다. 사람 같은 건 같이 가고 싶은 사람도 없고 이왕이면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신청한 곳은 영광이었다. 바다가 있는 작은 마을에서 하루종일 글만 쓰면 좀 살 거 같았다.
시간은 점차 가고 있었다. 어느새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어가는 계절이 오자 휴가일정을 맞추기 위해 타이트하게 회사일을 수행했지만, '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했던 기간은 2주였다. 에릭로메르 영화를 봤을 때 충격적이었던 건 바캉스 기간이 1달에 육박한다는 것이었다. 난 당장 2주를 내는 것만 해도 미리 양해를 구해야만 했다. 하지만 일정이 다가올수록 휴가일정은 1주 반으로 줄여야 했고 결국 휴가 전날에는 1주로 줄여야만 했다.
금요일에 퇴근하면서는, 숨통이 트인 기분이었다. 항상 주중을 마무리하고 금요일이 되면 느끼는 해방감은 마치 시한부 같았다. 하지만 열흘가량을 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매일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사람은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로또가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이다.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에 떠나면 됐다. 담당자는 금요일 퇴근 무렵에 전화를 걸어와 국내여행보험을 들면 계좌로 입금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앞선 참가자들이 작성한 후기를 참고하라고 했다.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서 내용을 보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감각이 왔다. 나는 휴식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후기는 '지역에서 살면서 일하는 것'이었다. 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곳에서도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프로그램을 바꾼다고 말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교정교열 쪽에 더 가까워서 지역을 바꾸더라도 그러고 싶다
라고 말했더니 담당자는 알았다고 했다. 지역은 내가 사는 곳에서 1시간 내의 거리였다.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며 관련기업을 취재하는 일이라고 했다. 사실 가장 하고 싶었던 건 지역에서 쉬면서 글 쓰는 일이었다. 담당자는 말했다.
-누구는 '왜 일하는데 돈을 못 받냐'라고 하지만 원래는 지자체 지원을 받던걸 선정이 되지 못해서 지역신문사에서 자부담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프로그램 취지가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라고 말했다. 불현듯 과거 조그만 신문사에서 일하며 박봉을 받으며 일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저는 쉬고 싶은데요
-대표님께 말씀드렸더니 조절할 수 있다고 하시네요.
라고 말했지만 나는 '일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요. 신청을 취소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더니 이유를 물었다.
-저는 제 글을 쓰고 싶지 지역사회에 대한 글을 쓰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하니 담당자는 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