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아 Jun 19. 2024

부산 혼밥 첫번째는 역앞의 ‘신발원’

한순간에 계획을 세웠던 것들이 무산되면서 붕 뜨게 되었다. 그때부터 다시 원점이었다.


-어딜 가야 하지?

고민하는 건 꽤나 즐거웠다. 이미 내버린 여름휴가 기안. 어떤 의무도 없는 9일.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은 직장인이 아닌 야생인으로의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단지 휴가 말미에 할머니 생신일자가 있었는데, 항상 어머니를 픽업하던걸 못하겠다고 미리 언질을 해 두었다. 어머니는 잠깐 아쉬워하는 것 같았지만 괜찮다고 했다. 어머니를 케어하는데도 묶여있는다는 기분이 드는 걸 보면 가족이 생겼을 때의 부자유스러움은 불을 보듯 뻔했다. 한동안 '혼자인 게 다행이야'라고 생각했다.


항상 두꺼운 베이스음악이 들리는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떠한 인종이나 계급, 성별의 차이가 없는 곳에 가면 나는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공간에 항상 큰 흥미를 느꼈다. 베를린의 클럽이 가보고 싶었다. 유명한 사상가였던 니체나 쇼펜하우어 같은 곳을 낳은 유럽의 한 도시에 가면 그런 사상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예약해도 내일 출발할 수 있는 비행 편을 구할 수는 있었다. 단지 항공권의 가격이 백만 원을 초과하고 경유를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8일 동안의 여행에서 해당 기간을 빼면 5일을 여행할 수 있는 건데, 잠깐의 쾌락을 위해 소모해야 하는 시간이 크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인생의 많은 것들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긴 하지만,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한동안 검색을 하다가 찾아보게 된 것이 워케이션이었다. 사실 쉬고 싶다고 매 순간 외치지만, 글 쓰는 것을 일로 본다면 나는 쉬러 간 곳에서도 일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어떤 배설하는 기분을 주어서, 그래야만 내 본분을 다했다는 생각이 휴가기간마다 항상 있었다. 예전에는 사업자만 워케이션을 할 수 있었는데 직장인에게까지 확대된 모양이었다. 취지는 부산이 사업하기 좋은 것이라는 걸 홍보하기 위함이지만, 가서 다른 이들과의 교류를 하기보다는 '나'가 무언지, 내가 원하는 건 뭔지, 회사일을 배제하면 '무엇'으로 존재하는지 타자로서 나를 보고 싶었다.


주말에 프로그램을 신청했더니 상담센터는 주중에만 가능하다고 했다. 하릴없이 월요일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짧은 휴가는 안되고, 5일 이상을 숙박할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했다. 일당 5만 원의 바우처를 지급해 주는데, 미리 숙소예약을 해서는 안되며, 신청이 승인되고 난 다음에 결제 시에 쿠폰을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신청승인이 안되면 그냥 집에서 묵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지 뭐'라고 생각하자 부담이 없었다. 인근의 신상카페나 가면서 커피를 마실 예정이었다.


월요일 9시에 시황을 체크하고 나서 채널로 연락했더니 숙박앱 담당자가 출근을 안 해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별 상관은 없었다. 늦게 승인되면 늦게 가면 되니까. 2개의 숙박앱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1개의 앱은 예약할 수 있는 숙소가 너무 적고 열악해서 선택할 건더기도 없었다. 12시가 넘어서 다른 앱을 통해 신청할 수 있었고, 참가자들의 후기를 찾아보니 5만 원을 초과하는 꽤나 괜찮은 비즈니스 호텔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었다. 원래는 여행할 때 숙소는 잠만 자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바우처가 있다는 것이 좀 더 좋은 걸 선택하게 만들었다.

그래봤자 5성급은 아니지만, 5성급은 레스토랑이나 바 등 다른 걸로도 이용할 수 있으니 그런 건 아주 부유해졌을 때 하기로 했다.






스케줄이 어떨지 몰라 아침부터 국밥을 먹고 근교의 수국카페에 와 있었다. 사진동호회에서 찾았던 그곳은 사유지를 카페로 개발한 케이스였는데, 주차장이 아주 넓고 정원 또한 관리가 잘 돼있었다. 커피맛은 그저 그랬지만 풍경값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수많은 빵이 있었지만 배불러서 패스하고 가져간 책을 읽었다. 그러던 중 담당자의 승인이 났고, 숙소를 예약하자 떠나기만 하면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와 짐을 챙긴 다음에 비로소 떠났다. 기차를 탈지 자차를 이용할지 집에 오는 순간에도 고민이 되었지만, 부산교통이 극악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싫다는 이유로 차를 가져가게 됐다. 가면서 160을 밟으면서는 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슈퍼카면 더 밟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네비는 3시간을 안내해 주었지만, 교통상황으로 인해 시간은 점차 늘어났다. 아까 길을 지나면서 본 주유소의 기름값이 비싸다고 지나쳤는데, 막상 더 비싼 금액으로 휴게소에서 주유해야 했다. 앞서 간 금강휴게소에는 LPG가 없어서 다음 휴게소에서 주유했더니 리터당 천 원이 넘어 아깝게 느껴졌다. 주유원은 어디 있다가 경적을 울리니 느릿느릿 나타났다.


가는 길엔 사고가 났다고 지도가 알려주었지만, 알고 보니 공사 현장이었다. 주유소를 들렀다 오느라 정체구간을 지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부산에 도착하는 입구부터 정체가 시작됐는데, 차머리부터 들이대고 보는 노란 유치원생차의 운전자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다가 끼어들기할 땐 창문을 닫았다.

-정말 스트레스군.

하고 입장하는데 하이패스가 얼마 전부터 되지 않아서 현금줄로 입장했더니 대부분의 차가 하이패스단말기가 있기 때문에 현금줄이 더 빨랐다.

-좋을 때도 있군.


하고 진입하자 아수라장이었다. 잘 정리된 도로의 도시에서 살다가 과거로부터 이어온 길을 가는 경험은 피로함을 안겨주었다. 차선은 갑자기 줄어들기 마련이었고 유턴은 버스전용차선을 가로질러 있기 마련이었다. 기존의 운전난이도가 극하라면 극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깜빡이 없이 끼어들었고 오히려 내가 잦은 깜빡이 이용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부산역에 가까워지자 피로도는 극에 달했는데, 아까부터 하품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차량 안 공기가 부족해서 그런가' 창문을 계속 열었다 닫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부산 내 이동을 용이하게 하려고 가져온 차가 조금 후회되었다. 거점센터에서 방문인증을 하고 호텔로 이동해야 했는데 둘 다 역과 가까워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스티호텔 24층의 전망은 아름다웠다. 구시가지인 다닥다닥한 건물과 마천루가 나눠진 풍경은 이질적이었다. 비로소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관광바우처도 예약할 수 있어서 횡재한 기분까지 들었다. 웰컴키트도 마찬가지였다. 전망을 구경하면서 일하는 사람을 세어보니 3명 정도의 손에 꼽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화장실에서 웰컴키트를 꺼내보니 플라스틱 텀블러와 키링, 손소독제, 노트, 펜, 우산이었다. 크기만 크고 실속은 없는 모양새여서 우산을 빼고 나머지는 버렸다.


라마다는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는데 차로 가려니 돌아가야 하는 게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무거운 짐 들기 싫어서 내가 선택한 거니 어쩔 수 없다고 갔다. 리셉션은 신속히 방을 배정해 주었고 방에 들어오자 안도감이 들었다. 쉬고 싶었지만 저녁을 먹어야 했다. 아까 국밥을 먹을 때 디저트로 산 엿을 아까 차에서 배고파서 먹어서 허기를 조금 달랬을 뿐이었다. 아까 방문했던 아스티 24층에 참가자들이 적어놓은 맛집리스트를 사진첩에 저장해 놓았지만, 그런 것보단 잡지에서 소개된 곳, 미슐랭 선정장소를 가는 걸 더 선호한다.





나와서 가는 길엔 노숙자가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있었다. 서울역과 비교되었다. 예전에도 서울역 역시 노숙자가 아무렇게나 누워있곤 했는데 지금은 좀 정리가 되었다 본다면, 여긴 아직 그랬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어서 가는 장소는 부산역 앞에 위치한 차이나타운 안에 있었다. 길을 가는데 러시아어로 쓰인 미용실과 완전히 중국느낌이 나는 중국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윽고 찾아간 곳은 재료소진이라고 했고, 그나마 간판이 깨끗한 곳을 찾으니 그곳이 신발원이라고 했다. '무슨 이름이 이래?'라고 생각했지만 만두를 파는 그곳은 매우 저렴했고, 손님이 끊임없이 방문했다.


-몇 분이세요?

-한 명이요

-편한데 앉으세요


라고 둘러보니 출장으로 온 남자 2가 앉아있는 테이블과 마찬가지로 그런 남성이 앉아있는 1 테이블, 그리고 커플이 앉아있었다. 두리번거리는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받을 수 없는 자리에 앉자 나머지 테이블이 금방 찼다. 주문한 새우만두는 소를 찢자 육즙이 흘러나왔다. 오이무침을 시키려고 했더니 재료소진이라고 했다.

-재료소진이 왜 이렇게 많아


라고 생각하며 완식 하고 나왔더니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로비에 앉아있으니 아까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 2명이 로비로 왔다. 상사로 추정되는 남자는 부하에게 끊임없이 조언하려 했지만, 부하는 '그럴 때면 수영을 해요'라며 발원지를 끊임없이 차단시키려고 했다.


-생각만 해도 피곤해.

라고 마음속으로 말하고 있는 와중에 그들은 떠났고 방으로 올라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