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보니 정든 건가 연락이 안 오는 게 이상하기만 하다. 내가 먼저 하면 되는데 그러긴 싫다. 연락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는 친구 이상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낚시는 내 나쁜 습성에 가까워서 안 넘어오자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난 4년 전에 밥값을 반해서 보내달라고 했을 때 재수 없다며 돈만 보내주고 말았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인연이 이어지지 않았을 테니. 친구사이라고 말하면서 손을 잡고, 안는 것이 허용된다면 그건 친구가 아니거나 몸이 고픈 것일 테다. 그는 몸이 필요하고 나는 사소한 것도 말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에게 안기던 기분은 잊고 있던, 낯선 타인에게 안기던 기분을 들게 했다. 그건 익숙하지 않아서 신선했다. 예전 누군가가 내 목을 타고 입술을 대었을 때 그건 너무 황홀했지만,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했던 것처럼.
윤이 나를 안았을 때, 그다음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도 나도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몸을 떼고 나서 얼굴을 쳐다보기에도 황망해 헛헛이 차로 되돌아가곤 말았다. 그는 '나'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간다면 그와 나 사이를 정의해야 한다는 것을 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어떤 켕기는 것이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고, 나도 그가 남자로 느껴진다기보다 그의 성격이나 안정적인 면때문에 그렇게 느낀다는 걸 안다. 우린 절대 잘 될 수 없다.
- 어디 산다고 했지?
- 대학원 근처
- 거기 많이 들어봤는데?
- 연구기관이지.
이 질문도 3번은 넘게 했다. 그는 응~ 아! 이런 추임새를 넣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이해했는지 아닌지 몰라 나는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 상대방에게 호감이 있는 남자가 여자의 아주 사소한 것까지 기억한다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에게 나는 아웃오브안중인 걸 알고 있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부정하는 것이다. 이쯤이면 그가 내게 관심이 없단 걸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만나면 하는 똑같은 패턴들, 시간을 죽일 '소모적인 것-예를 들면 게임'을 하다가 밤거리를 쏘다니다가 어색한 스킨십을 하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생기길 바라면서 깊은 대화가 된다고 생각지도 않으면서, 단지 주말 밤이 헛헛하단 이유로 그를 계속 만나는 게 맞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럼 안 만나면 되지만 그가 연락이 온다면 또 싫은 척하면서 휘적휘적 나가게 될 나를 안다. 그건 거절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일 수도 있고, 그가 내가 힘들 때 있어줬던 것에 대한 의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가 내 거절에 대해 크리티컬 하게 느끼지 않는다면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은 방향인걸 안다.
하다못해 명백한 거절을 표해도 되는 상황에서 그가 긍정했을 때, '얘는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강하구나'라고 생각했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거절을 하지 못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건 결국 시간낭비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멋진 911에 태울 반반한 여자가 필요했고, 나는 사실 필요도 없는 봉제인형을 선물 받는다는 명목으로 꾸역꾸역 나가는 게 맞나 싶다. 그가 시작하자고 하면 거절할 거면서, 착한 사람이 되려고 친구라는 이름 하에 그를 묶어두는 건 결국 그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선데 그에게 난 과연 좋은 사람인가? 주변의 수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 아니고?
그에게 '나 이용해'라고 말하면서, 사실 그 말을 들은 그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안쓰럽게 바라보길 바란 거였나? 아님 네가 날 이용하는 걸 알고 있으니 동일선상이란 걸 증명하고 싶었던 거야? 그에게 내 시간을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실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진 모르겠다. 수틀리면 이러다 안 가고 말겠지. '그' 또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의 허무를 깨닫고 연락이 안 올지도. 아마도 그땐 서로가 끝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할 때고. 그럼 상처받기 싫다고 (그에게) 했던 말은 공중분해 되겠지. 이렇게 끝을 그려보는 것도 지겨워서 시간에 맡기자고 하면서도 결국 혼자 있는 시간엔 곰곰이 떠올리게 된다. 관계란 결국 누군가의 배신으로 끝나는데 또 피해자가 될까 봐 두려운 거야. 과거의 시간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측들. 요가를 할 땐 생각이 안 나는데 그렇다고 5시간을 요가할 순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