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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Jul 01. 2024

그의 흔적을 좇으며

서울에 갈 일이 있어 회사에 가지 않았다. 눈 뜨고 한참을 미적미적거리는 건 좋았다. 그러다가 머리를 천천히 말리고 빨래까지 야무지게 한 다음 출발했다. 기름을 넣어야 해서다. 가스차여서 충전소가 별로 없어 가는 길에 넣곤 하는데 깜빡하고 그 길로 안 가고 다른 길로 가는 바람에 기름이 0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 결국 경로 밖의 주유소를 이용해야 했다. 리터당 100원 차인데.


역에 도착했더니 역시 주차자리는 없어 뱅뱅 돌다가 다행히 발레파킹해준다고 해서 차 놓고 내렸다. 가는 길에 베이커리가 맛있었는데 높은 임대료 때문인지 없어져서 아쉬웠다. 원랜 항상 좌석지정을 안 하고 예매했는데 덜 걸으려고 엘리베이터 올라오자마자 호수로 타니 편했다. 하지만 옆자리의 남성은 담배냄새가 역했는데 그걸 향수냄새로 가리고 있었다. 최악이었다. 대중교통을 타기 싫은 이유가 타인의 체취 때문인데 그 때문에 차를 가져갈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기차를 탔더니 이런 상황이었다. 결국 참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산관리팀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랜드파르나스호텔을 가는 걸 보아 인스타 자산관리사인 것 같았다.


도착해선 오랜만에 빅맥을 먹고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바로 오는 버스를 놓치고 나서 다음걸 탔는데 그걸 잘못 탔다. 151을 타야 했는데 501을 타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 기사가 중간에 어디 가냐고 물어봤다. '서울대병원 가는데요' '이건 서울대 가요.' 후다닥 내려서 다른 버슬 타니 이미 교육 시작시간이 지나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거리에는 많은 외국인과 사람이 있었고 지나는 길에 흡연부스에서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 사람들 먹고살려고 건강 팔아가며 일하는구나 이런 생각이었다.




도착해선 데이터 분석방법 배우고 나와서 역에서 네일을 좀 받을 요량이었다. 서울역엔 섬섬옥수가 없어 용산에 갔는데 그마저 마감시간이어서 못 받자 시간이 붕 떴다. 용산에는 쉑쉑이 있었고 나는 필연적으로 그를 떠올렸다. 그건 너무 고통스러웠다. 마치 그를 만날 수 없단 걸 알고 연락조차 하지 않으면서 무의식적으로 그의 흔적을 찾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나의 지역으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힘겹게 받아들이면서, 그의 회사가 있는 종로를 볼 때면 마음이 아프고, 그를 만나면 피상적인 관계에서 느낄 수 없는 진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아쉬워했다. 가장 곤혹스러운 건 그는 나를 이만큼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이미 지나간 일로 기억조차 않을 일을 나 혼자 끙끙대고 마음고생하고 있는 나 자신이 가엾지만 이건 이미 굳어져 버렸다. 지금 과거에 묶여있다면, 미래에는 얼마나 많은 과오때문에 힘들어하게 될까.


플랫폼에 서있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책을 읽다 눈을 들었을 땐 행인이 황급히 눈을 돌렸다. 피곤하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시선을 받는 게 싫다. 그래서 한적하고 사람이 없는 곳이 좋다. 내일 또 평범한 사람들과 지지고 볶을 생각 하니 지겨울 따름이다. 그나마 금요일인 것에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나 자신이 특별하단 생각을 버리지 못한 채 필부필녀와 어울려야 하는 현실은 망상에만 젖게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일하고 싶고 교류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싫다. 예전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이 '싫은 사람과는 일 안 해도 되니까요'라고 말할 때 그게 진심으로 부러웠다. 또 생각이 많아져서 요가를 했다. GX가 주 7일 요가하면 좋을 텐데 주 2는 너무 적다. 인생이 바뀌길 기대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갈 것이란 생각은 우울감에 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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