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어제 일 때문이었다. 윤은 여느날같이 당일 연락을 해왔다. '같이 축구 보자' 스팸카톡속 단비라, 수신된 시간에 바로 답장을 보냈다. 마침 출장때문에 대전에 있었고 축구를 보고 바로 숙소로 돌아오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지독히 외로워하고 있었다. 교육 첫번째 날엔 아이 쇼핑을 길게 하고 서점에 가서 주식책도 구매했지만, 대전에 그가 있단걸 알면서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후로 내가 연예인을 닮았단 핑계로 연락을 해왔지만 그땐 만나고 싶지 않아서 적당히 대화를 하다 끊었다.
하지만 나는 마침 외지에 와 있었고, 누군가가 필요했다. 같이 교육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초면인 사람이었지만, 그들과의 교류는 전혀 없었다. 수강생으로만 같은 공간에 있을뿐 식사나 교육후에는 홀홀이 흩어지곤 말았다. 나 또한 어떤 접점을 바란건 아니지만, 막상 그들로부터 스몰토크가 들어와도 달갑지 않을 것 같은 이중적 감정이었다. 그러던 중 그에게 온 연락은 '또 집오란 얘기네'라는 의심이 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나는 그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그간 그가 보여준 행동에 신뢰하지 못할 구석은 명백히 있었지만 애써 위험신호를 무시한 것이다.
수업은 풍선이 바람 빠지는 것처럼 허무하게 끝났고, 생활관으로 돌아와 누워서 티비를 봤다. 평소 보지 않던 티비지만, 여행을 오면 구비돼 있는 티비를 틀곤 한다. 낯선 곳에 있단 느낌은 공백을 메꾸기 위해 화면을 키게 했다. 청각으론 들리지만 뇌로 입력되지 않는 상황을 한동안 보내다가 나는 그를 만나기 전 5시간동안 멍하게 있을 것임을 직감했다. 있지도 않을 상황을 시뮬레이션 하며 보낼 시간이 아깝겠다고 생각되어 주차되어 있던 차를 빼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날은 요가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타지였지만 바로 옆 도시여서 삼십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그마저의 거리도 집에 있기 싫다는 이유로 숙소까지 신청해서 원래는 퇴근하면 숙소에 박혀있었겠지만 결국 요가수업을 참석하기로 했다. 복잡한 생각이 있을때 요가를 하면 머리를 無의 상태로 되돌리고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난 알수없는 감상에 젖어 When the October goes를 들었고 어두운 도로의 점멸하는 불빛은 집에 가는 길이지만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느낌을 주었다. 그날 수업은 평소 하던것과 달리 난이도가 있었고 난이도 있는 동작에 땀을 한바가지 흘리고 나자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래 그냥 걔도 혼자 축구를 보기 싫어서 오라고 하는 걸거야'라는 왜곡된 인식을 너무나 명백하게 했다.
그의 집으로 출발했다. 마침 빨래를 돌리고 나니 도착예정시간이 딱 맞아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운전했다. 그는 '자는거 아니지?'라는 톡을 보내왔고 '곧 가'란 말로 오피스텔의 지하 주차장에 정차했다. 도착했다고 하니 그는 주차장으로 마중나왔다.
'윤아'
그날의 난 운동후 상쾌함 때문인지, 혼자 있지 않다는 기분 때문인지 이상하게 업되어 있었다. 그는 그런 내 표정에 잠시 당황하는 듯 했지만 어색하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그의 집 앞으로 갔다. 저번엔 정리되어 있지 않던 그의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들은 보이지 않았고 초가을의 열기를 낮춰줄만큼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다. 그는 '앉아'라고 말하며 좁은 거실을 가리켰다. 혼자 앉는게 적당할 만한 공간이어서 둘이 앉으니 거의 공간이 차다시피 했다. '뭐좀 먹을래?'그가 물어왔고 '요아정'이라고 말하자 그는 배달앱을 켜며 '골라'라고 했다. 토핑을 세개 골랐더니 삼만원이 초과하는 금액이었다. 애플망고와 메론과 몰티져스에 그가 원하는 초코시럽을 추가했고 그는 배달을 완료하자 '보여줄게 있어'라고 말하며 안방으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