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사용하기

by 강아

일상생활 하면서 내 몸에 대해 지각한 적은 없다. 많은 부분 몸을 움직이는 건 수단으로 작용한다. 제안평가 회의실 세팅을 하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몸, 출근에 늦지 않게 종종걸음해야 하는 몸, 정수기에 물을 뜨기 위해 일으켜야 하는 다리는 몸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내 몸을 느낄 때는 행위 자체를 할 때였다. 가령 꽤 긴 거리를 왕복하여 돌아올 때면 처음에는 팔과 다리를 가볍게 흔들지만 나중에는 발바닥을 착지하는 바닥의 느낌이 전해지고 약간의 통증이 느껴진다. 다리를 움직이면 혈관이 확장되며 집에 와서 누웠을 때 핏줄이 울컥하는 걸 다리의 3 군데서 느꼈을 때 나의 몸을 지각할 수 있었다.


요가를 등록했다. 예전에 요가를 했을 때 강사는 잔소리가 너무 많았다. 자세 하나를 할 때마다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수강생 사이를 돌아다니며 지적질이었고, 그런 말투는 너무 고압적이었다. 독립성을 중요시하고 참견을 제일 싫어하는 나로서는 할 때마다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등록기간인 한 달이 지나자마자 발길을 끊었다. 그녀는 왜 오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잔소리가 많아서요 말하기보다 무응답으로 대답했다. 일상의 많은 부분은 행동으로 보여진다. 말은 없어지거나 꾸며낼 수 있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타인을 볼 때도 그의 움직임을 본다.




19시 50분에 시작하는 아파트 단지 내의 수업이지만,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등록이 어려울 정도였다. 항상 해당월의 수강인원이 재등록을 해서 빈자리가 났을 경우에만 들어갈 수 있었고, 그마저 여분이 있는지 확인 후에 등록을 해야 했다. 아니면 개인사정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양도받아야 하는 번거로움과 일신상의 이유로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일상에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잠으로 충당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어쩌면 보루라는 심정으로 수강신청을 했다. 다행히 처음과 같은 등록 열기는 어느 정도 사라져 있어 수강할 수 있었다.


10분 전에 도착하자 아무도 없었다.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을 서성거리자 어떤 여자가 와서 '여기 맞나요?'라고 물었더니 그 여자가 '맞을 거예요 여기서 하는 거 봤거든요'라고 했다. 그녀도 처음 왔다고 했다. GX에 들어가서 불을 켜고 앉아있으니 얼마 있지 않아 몸에 달라붙는 연분홍 나시와 그레이 레깅스를 입은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성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요가강사였고 뒤이어 정적인 음악을 틀었다. 신입생에게 간략한 신체에 대한 것들을 묻고 수업은 시작했다.


그녀는 개인에게 과도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가운데에 앉아 본인이 하는 행동을 보여줬다. 또한 신속해서 무작정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처음에 다소 고난도의 동작을 반복하는 건 순식간에 땀이 나게 했다. 땀이 잘 나지 않는 내겐 그만큼 순간적 폭발임에 분명했다. 놀란 근육은 멈춰달라고 애원했지만 그걸 달랠 만큼 여유는 없었고 몸을 공중에 띄우고, 몸을 굴려서 발을 땅에 닿게 하고, 정수리로 물구나무를 서는 동작은 따라 할 수도 없어 비슷하게 흉내만 내는 것만으로 몸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몸이 어떤 자세를 불편해하고 어떤 동작을 편하게 느끼는지 몸을 몸으로 체험한 순간이었다. 그런 느낌은 너무 생경해서 기적과도 같이 느껴졌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은 '그렇다면 내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내 몸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도 없으면서 나 외의 것들을 움직이려고 했구나'하는 철학적인 생각도 들었다. 내 의지로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순간들의 단순성과 명징함이 좋았다.


동작을 취하며 죽을 것 같을 때 '살아있다'라는 걸 느꼈다. 삶의 순간들을 죽는것보다 못하다고 느낀다면

(삶의) 많은 부분들을 얼마나 안일하게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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