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서 한동안은 모임을 하지 않았다. 내가 있는 지역은 서울과 같이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돈을 낼 용의가 있더라도 괜찮아 보이는 모임을 찾기는 어려웠다. 가끔 서울 출장을 갈 때 그런 걸 참여해 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막차 시간을 고려해야 하는 것과 뉴페를 만나서 기 빨리는 등 예상하다 보면 참여하지 않는 쪽을 택하게 됐다. 소개글은 기존 참여자들의 흥미진진한 후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막상 참여했을 때 그 정도는 아닐 수도 있다는 불신도 있었다.
그러던 중 대전에서 모임이 있다고 했다. 그는 1회로 모임을 먼저 진행한 전적이 있었는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이유로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간혹 처음 모임을 만든 사람이 돈을 받으려는 명목으로 개설한 것들은 퀄리티가 현저히 떨어지거나 준비가 부족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돈을 내고 가야 할 날짜는 다가왔는데, 막상 그날이 되자 몸 상태도 별로고 낯선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경계감도 스멀스멀 들었다.
"저 환불해 주시면 안 될까요. 몸이 안 좋아서요"
라고 말하자, 호스트는 이미 확정된 인원의 회비로 장소대여 등 정산이 완료되었기 때문에 어렵다고 했다. 호스트가 장소대여공간과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란 의심이 들었지만 마냥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갈게요"
"괜찮으시겠어요?"
라고 그는 말했다. 퇴근하고 차를 끌고 도착한 그곳은 대전에서도 끝쪽에 위치한 신도시여서 내가 있는 곳과 거의 30km 정도 거리였다. 생각보다 외진 곳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들어서자 호스트로 보이는 그 사람은 선글라스를 줬다.
"낯가리실까 봐"
라고 그는 말했고, 이미 도착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은 제공된 네모난 안경을 다들 쓰고 있었다.
구체관절인형 같은 어색한 포즈를 하고 있던 약간 멋있어 보이고는 싶은데 실질적으로 그렇진 않은 한 사람이 호스트를 도와준답시고 내가 와인을 따르자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했는데, 느끼했다. 하지만 "감사합니다"라고 그의 도움을 받고, 핑거푸드를 담아 테이블에 앉았다.
사람들은 그 오글거림에 각자 어쩔 줄 모르는 모양으로 앉아 있었다. 나도 그랬지만, 이미 참석을 결정했으므로 꾸역꾸역 청포도를 밀어 넣고 있었다. 마침내 사람들이 모두 도착했고 대부분의 사람은 나보다 어린것 같았다.
우리는 각자 영어 이름을 부여받고 앉아 있었다. 서로를 익명으로 부르며, 내 이름은 써니였다. 게임의 순서는 카드를 뒤집어서 질문이 나오면 궁금한 사람을 지목해서 답을 받는 형식이었다. 가령 "집에 여자 팬티를 숨기고 있을 것 같은 사람" 같은 것이었다. 참석한 사람은 비주얼적으로 제일 괜찮은 미용사 남자, 아트사업을 한다는 (아까 똥폼 잡고 있던) 남자, 컴공과를 나와서 유튜버를 겸임하고 있다는 남자, 얼굴이 반반하고 약간 까탈스러울 것 같지만 주위사람에게 여우같이 잘할 것 같은 여자, 소탈하고 둥글둥글해 보이고 성격이 좋아 보이는 여자, 말수가 적고 등산을 즐기는 여자, 어느 자리에 가도 주변을 잘 챙기고 사랑받을 것 같은 카페운영 여자가 있었다.
우리는 카드를 뽑으며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디자이너라는 미용사는 서울에서 일하다가 지방으로 왔다고 했다. 직종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약간 게이삘이 났는데, 대놓고 "동성애자예요?"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휴무일이 되면 주로 대전 근교로 캠핑을 혼자 간다고 했다. 겉모습은 외향적일 것 같이 보이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소중히 하는 사람 같았다.
성격이 좋을 거 같다는 여자는 대답하기 곤란한 카드가 나왔을 때 동공지진이 일어나며 사람들을 둘러볼 때 눈이 마주쳐서 그것만으로도 코웃음이 서로 났다. 처음 만날 땐 내성적이지만 친해지면 더욱 좋은 관계가 될 사람 같았고, 그녀는 주로 자거나 등산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새침데기 여자는 오히려 호스트보다 명쾌하게 상황정리를 해주었고, 그 모습에 호스트가 머뭇거리자 "호스트가 허술하네"라고 했다. 오히려 그런 솔직한 모습이 상황을 부드럽게 해 주었고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에 대한 탐색을 이어갔다. 막상 궁금증이 확 일어나는 상대는 없었고 오히려 동성인 사람들의 특이점을 관찰하다가 모임은 종료되었다.
호스트는 기념촬영을 하고선 "모임이 괜찮으셨다면 자유롭게 2차를 가셔도 됩니다"라고 말했고, 사람들은 대부분 간다고 했다. 그때 시각이 자정 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음날 토익이 있었고, 그 핑계로 돌아오는 길에 '시험이 있어서 다행이군'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이 없었으면 거짓말을 못하는 나는 어영부영 참석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근처에 그럴듯한 호프가 없어 그들은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고 했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역시 헛헛했다.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자리가 1회 성일걸 알고 있기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런 모임들은 반복되었고, 채우려고 만난 모임은 채워지지 않은 마음을 남겼다. 결국 마음이 텅 비워져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정말 친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도 동일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정말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안타깝지만, 내가 그 상황을 해결해 줄수도 없고 그런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후기 사진을 올리며 저마다 '즐거웠다'라고 말했고 나는 토익을 보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