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떠서 딱히 할 건 없었고 토요일에 찾아본 라스 감독을 보러 갈까 했다. 주말이면 영화관에 가서 예술영화를 보곤 하는데 이유는 스토리구상을 위해서다. 영화를 어릴 때부터 좋아해서 집에는 영수증을 왕집게로 묶어놓은 게 있었는데 버렸다.
눈은 9시쯤 떴는데 소파에 누워있다가 배가 고파졌다. 역시 밥은 하기 싫어 뭘 먹을까 네이버카페 인기글을 보니 비빔밥집이 있었고 그건 도서관 옆에 있었다. 씻고 화장하고 나가려는 찰나 '영화관 앞에 쌀국숫집이 있는데 거길 가자'라고 생각이 바뀌어 20km를 갔다. 하지만 가는 도중에 또 생각이 바뀌어 둔산으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원래는 가진 책도 알라딘에 좀 팔고 신간도 볼 겸이었다. 주차를 생각하자 평소 자주 가던 카페 건물로 가자 싶었고, 그 건물에도 에머이가 있어 거기로 갔다.
프랜차이즈 쌀국수맛은 여전한 맛이었고 초마늘을 많이 먹었다. 몸이 따듯해지는 찰나 나오는 길에 H&M이 보였고 홀린 듯 들어가서 5개를 입어봤다. 디자인은 예뻤지만 입어보니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보여 결국 그나마 점잖은 골지원피스를 샀다. 5만 원짜리였는데 70% 할인한다고 들어갔던 건데 2만 원에 살 수 있었다. 주차시간은 삼십 분가량 남아있었고, 자라도 마저 들러 순식간에 옷을 봤다. 셋업도 있었지만 2만 원 매대에 있는 옷을 훑어보니 괜찮은 게 4개 정도 있었고, 입었을 때 '평소에 입을 수 있는가', '회사에서 입을 수 있는가' '배에 힘주지 않고 편하게 있을 수 있는가' 기준으로 추려내니 아무것도 없었다. 내려오는 길에 니트가 만원이어서 그거 사고 왔다. 어제 갔던 백화점 1층을 둘러 나오는데 롤렉스매장만 빛나고 있고 직원들도 고객이 지나가든 말든 상관 안 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전 사람들은 이제 다 신세계 가는듯하다.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가는 길은 더웠는데 갑자기 맑은 하늘에 스콜처럼 비가 내리곤 했다. 그러다 금방 그쳤다. 쇼핑을 마치고 가니 가는 시간 합하면 영화가 시작할 시간에 여유롭게 도착해서 좋았다. 계획을 타이트하게 세우는 편이 아니지만, 은근히 시간이 잘 맞춰지면 쾌감까지 드는 것이다. 요새 영화값도 비싸서 지역카페에서 만오천 원짜리 영화표를 만원에 예매했다.
첫 번째 영화는 브레이킹 더 웨이브였는데, 순진한 여자가 남자에게 이용당하다 죽는 이야기였다. 이 한 문장을 3시간에 걸쳐 영상으로 만들어낼 수 있구나를 다시금 느꼈고 중간마다 스틸컷을 넣는 게 인상적이었다. 중간에 여주의 전라가 기억에 남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족시키게 하려고 하는 그녀의 희생들이 무모하게 느껴졌지만, 그런 경험을 안 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애의 측면에서 사랑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절대 하지 못할 행동들이기도 하다. 나는 상대방을 위해 희생했었나? 그랬던 적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에는 철저하게 배신당했다. 상대방을 이용했을 때는 타격이 크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사마리아 같았다. 사람들이 창녀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부르는 자'들은 결코 숭고한 사랑 따위 해본 사람이 아니다. 타인에게 멸시당하면서도 자신의 망상을 굳건히 하는 게 어쩌면 본질에 가까운 것일 게다. 그녀가 죽었을 때 얀은 바다장을 치러주었지만, 그가 흘린 눈물은 어쩌면 '그녀의 행위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에 가깝게 보였다. 라스 감독의 영화는 잊고 있던 지난 기억을 되새김질하게 만들었고, 그건 처절한 오열로 발현되었다.
두 번째 영화는 백치들이었는데, 정상적 범위를 벗어난 장애인을 연기하며 그걸 통해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에 대해 그린 영화다. 그들은 나체로 정원을 뛰놀고, 난교파티를 하고, 본인들을 도와주겠다고 온 사람에게도 파시스트라고 욕하며 내쫓곤 한다. 사촌의 거대저택을 빌려 살면서 결국 그들의 행위가 중산층의 허영에 그치지 않는 건지 고민한다. 캐비어를 퍼먹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재벌의 마약같이 풍요 속의 빈곤 비슷한 게 아닐까. 당장 생에 발붙여 현실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을 그들은 어떤 '유희'로서 행위하고 그걸 통해 '자유'란 가치를 숭상한다. 부르주아의 역습이다. 결국 카렌만이 그녀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바보짓을 할 수 있었고 그건 그녀가 처한 현실의 궁핍, 비참함을 보여주었다. 유럽이기에 가능했지 씹선비나라 한국에선 절대 못할 행동과 기획이다. 이럴 때면 이민의 열망이 또 기어 나오지만, 사람들이 많이 보는 유학/여행 브이로거들이 나와 같은 한국인의 욕망을 대리충족시켜주고 있는 거지.
세 번째는 어둠 속의 댄서였는데, 느낀 점은 '누가 내게 비밀을 말한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나를 오픈하지 말자'였다. 장님인 그녀는 모아둔 돈을 신뢰하던 이웃에게 빼앗기고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히지만, 한국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클리셰-기적이 일어나 감옥에서 벗어난다-가 없어서 마음에 들었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을 다룬 판타지, 희망을 다룬 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현실의 추잡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실주의가 영화가 해야 할 역할이고 트리에가 말한 것처럼 '생각한 것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어처구니없게 트릭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 삶이 아름다운 걸로 가득 차 감동에 겨워 즙 짜는 콘텐츠는 필요 없다. 오히려 삶은 비극적이고 고통에 가까우며, 그런 걸 이겨내고 살아야 해-와 같은 가르치려고 하는 의도가 없고 교수형 당하는걸 직접적으로 보여주어 더욱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여준 목매달기-는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았다. 한 번의 컷, 1초의 장면으로 끝이었고 그걸 가감 없이 보여준 감독이 더 놀라웠다. 지독히 염세적인 라스지만, 나는 그가 염세적이어서 좋았다. 그럼에도 美를 보여주는 사람이라서 더욱 좋았다. 나도 라스처럼 되고 싶다. 너무 충격인 하루였지만, 나 같은 사람이 지구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