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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Jul 25. 2024

상처난 복숭아와 캠핑

내가 제일 중요해



어릴 때 휴가라는 건 내게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인천에 살던 나는, 휴가기간이 되면 주로 영흥도, 무의도 등 섬이나 태안반도, 서해 등을 갔다. 하지만 말이 좋아 캠핑이지 휴가는 고행에 가까웠다. 텐트를 여행지에 가져가서, 치는 일부터 일이었다. 편히 쉬려고 간 건지 일하러 간지 모를 만큼 얼마간의 시간을 텐트를 치는데 고생을 하다가, 물놀이를 할라치면 밥을 해야 했다. 물론 밥은 내가 안 했지만 돈을 아끼려고 음식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가서 또 불판과 각종 반찬을 차리고 먹고 난 다음 치우는 건 노동에 가까웠다. 수상레저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조개를 캐는 등의 일을 하고 나면 잠자리가 문제였는데, 바닥이 돌바닥이어서 매트를 깔아도 불편함은 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여름밤은 모기떼로 인해 한바탕 뜯기고 나면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 채 아침은 밝아오는 것이다. 제대로 씻지 못해 습함과 불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휴가조차 가기 싫다고 말할 수는 없었는데, 그때는 어렸고 가족이 가면 따라가야 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갔던 것이다. 그런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면 피로가 풀리지 않고 더 쌓인 채로 집에 돌아왔다. '다른 집은 숙소를 구해서 가는 거 같은데 왜 우리는 맨날 이 고생을 해야 하지'라고 생각했지만 입밖에 꺼내면 호강에 겨웠다고 본인 어릴 때는 이마저도 못했다며 갑자기 화를 내고 말 아버지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은 입안에 담았다. 그래서 지금도 캠핑, 차박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매우 싫어하며 그때와 다르게 좋은 장비와 감성적인 걸로 채울 수 있다고 해도 여전히 밖에서 자는 건 싫다.  




회사가 세종으로 이전해 몇 년간을 살았다. 조치원은 복숭아 산지로 유명한 지역이라, 부모님이 오시면 복숭아를 사가곤 했다. 막내도 복숭아를 아주 좋아해서 박스째로 샀다. 그날은 농장에 갔는데, 일반 복숭아는 나무박스당 3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고, 파치라고 불리는 상처가 난 복숭아는 2만 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림을 해오며 살아온 어머니는 만원 싸단 이유로 상처가 난 복숭아를 구매하길 원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돈을 절약하던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서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예전 습관이 없어지지 않은 듯했다. 그런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도 없어서 가져온 복숭아는 심지어 벌레가 먹기도 하고 만신창이어서 과육보다 버리는 부분이 많았다.


애초부터 상처가 나지 않은 복숭아를 샀으면 됐을 텐데 어머니는 항상 그랬다. 가격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다 어릴 때 먹던 딸기는 늘 어딘가가 물러있고 단단하지 않았다. 마트마다 가격을 비교해 싼 것을 골라사서 적은 생활비로 생계를 꾸려온 어머니는 인정하지만, 가끔 본인에게 너무 박하다 싶게 볼품없는 걸 구매하는 걸 보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나를 희생해서 자식에게 주기 위해 투자하기보다 내게 투자한다. 평생 중고차를 스러질 때까지 몬 아버지가 싫어 카오디오를 위해 더 좋은 차를 구매하고, 벌레가 나오는 본가가 싫어 내 집은 신축으로 구매해서 누군가 쓰던 변기에 앉지 않는다. 그들의 취향이 아닌 내 취향의 디자인인 원목테이블을 구매하고, 날 최우선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복숭아는 최상품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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