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지만, 차는 밟으면 정직하게 속도를 내
차 욕심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러나 내가 차를 구매할 시에는 기준이 몇 개 있다. 첫 번째 조건은 차량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야 한 다이다. 원래 차는 블루투스 연결이 안 되어서 Aux선을 연결해서 음악을 들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듣는 음악은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사제로 네비를 달아놨었는데, 구형네비라 업데이트도 여의치 않고 경고음도 작아서 처음에 딱지 뗀 것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티맵으로 다니면 됐겠지만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15년식 k5였는데 열쇠시동으로 되어있는 걸 사제로 스마트키로 달아놓은 겉모습만 멀쩡한 차였다.
많은 추억이 있었다. 차 시운전을 하는데 주차를 잘못해서 후방주차하다 옆 k5 3세대를 쫙 긁었더니 외국인 주인이 나타나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보험처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폭을 감지하지 못해 차 옆문을 시원하게 긁어 하루에 2번 사고가 났다. 얼마 되지 않아 차를 빼려다가 부주의로 타차와 부딪혀 범퍼가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나간 범퍼도 알고 보니 수리한 부분이 벌겋게 되어있었다. 회사 선배는 '처음엔 많이 부딪히니까 타차가 가해할 때까지 버티고 있어'라고 했지만 첫 차에 흠집이 간 건 내 얼굴에 흠이 난 것과 동일하게 느껴졌다. 아무도 내 차를 뚫어지듯 보지 않지만 나 혼자 찔린 셈이었다.
그 밖에 방지턱에 긁혀 사이드스커트가 나가기도 했고 시골길을 지나다 뒤 범퍼 하부가 긁히기도 했다. 전면주차한 차를 빼다 기둥에 박아서 휀더가 찌그러졌는데 몇 달 있다 누가 차를 박고 가서 보험 처리하기도 했다. 타이어 마모를 차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정기검사 때 발견해서 첫차를 살 땐 타이어도 확인해야 하고 브레이크패드도 확인해야 된단 걸 배웠고, 배터리 방전으로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땐 다음일정을 가지 못하게 되어 발을 동동 구르던 때도 있었다. 결국 긴급출동으로 해결했지만 '이래서 차가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하는구나'를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는 활동반경을 늘려주었고, 특히 기분이 안 좋을 땐 드라이브하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세상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지만, 밟으면 정직하게 속도를 내주는 차는 내게 최고의 친구였다.
기존차의 큰 소리로 음악을 들을 수 없단 점과, 사제로 네비를 다는 바람에 시가잭 부분이 고장 나서 차량 내 핸드폰충전이 안된다는 건 큰 단점이었다. 결국 차를 바꾸기로 했고 외제차는 보험료 때문에 결국 마음을 접어야 했다. 하차감을 중시한다면 무리해서라도 갔겠으나, 아무리 멋진 차를 몰아도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별로이면 멋져 보이지 않았다. (물론 멋진 사람이 멋진 차에서 내리는 건 좋다.) 막상 차를 보내려니 오래된 친굴 떠나보내는 느낌이다. 음악이랑 충전부분만 됐으면 폐차할 때까지 끌려고 했는데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