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배신하지 않을 사람과 가족을 꾸릴 수 있을까

by 강아

연휴 첫날은 그야말로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나서 무력감에 젖어 있었다. 혼자만을 위한 밥을 차릴 힘도 없어 배달음식으로 연명했다. 연휴 첫날은 먹고 자고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다음날엔 가족이 오는 날이었다. 내겐 동생이 있는데 부모의 핍박 속에 우애가 아주 깊게 됐다. 동생은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퍼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가를 자문할 때 그에게 줘도 아깝지 않은지로 판단했다. 대개는 호혜적 관계에서 물건을 줬을 뿐 동생처럼 아깝지 않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튼 동생이 오기 전에 집 청소를 했다. 치울 건 별로 없지만 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이 집안일이어서 테이블 위를 비우고 머리카락과 먼지를 쓸고 닦고 하다 보니 마중 나가야 할 시간이 됐다. 추석이지만 날은 여름이었고 반가운 얼굴을 보자마자 평소에 하던 부정적인 생각과 고뇌 같은 건 할 겨를이 없게 됐다.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단 그들이 먹고 싶은 것, 그리고 지역에서 유명한 데를 데려가야 한다는 가벼운 압박감이 들었다. 차를 몰고 갔더니 웨이팅이 있었고 기다리는 동안 H&M을 구경하다 보니 차례가 금방 다가와서 식당에 들어갔다.


회전초밥집에 처음 온다는 동생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불렀다. 휘황찬란하지만 막상 몇 접시 먹지도 못하고 나와 집에 와서 전을 부쳤다. 평소 같으면 '집안 어질러지게 요리는 무슨, 사자'라고 했을 테지만 가정적인 동생은 직접 요리하는 걸 즐기는 스타일이었고 그런 동생에게 매몰차게 말할 이유 또한 없었다. 슈퍼에서 장을 보고 전을 부치는데 손에 닿는 해동된 동태포의 느낌이 괴이했다. 전 공장을 가동하니 명절마다 수많은 전을 부치는 가사노동이 더욱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한 끼만 먹어도 질릴 음식을 먹지도 못할 만큼 부쳐서 냉동실로 직행하는 건 정말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며 부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양이 양산되었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맛만 보고 냉장고에 넣어둔 다음 홍성으로 갔다.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찾는 서해는 언제나처럼 아름다웠고 가는 길에 동생들은 잤다. 어릴 적 시골에 갈 때마다 멀미해서 자는 나를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이 이랬을까 싶었다. 자는 모습은 운전을 더 천천히 하게 했고 그 와중에 차창으로 비치는 노을은 하염없이 아름다워서 연속으로 셔터를 누르게 했다. 도착할 즈음엔 날이 어두워져 있었고 관광지 특유의 쇠락한 느낌이 반겨주었다. 나는 그런 느낌을 아주 좋아한다. 영원하지 않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떠나고 돌아오며, 지나간 시간을 관조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항상 시간의 흐름은 내게 가장 큰 관심사였다. 지금으로선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는, 풍화되고 나면 해결이든 미해결이든 종결이 되어있곤 했다. 그래서 어느 날엔 시간이 아주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중이면 지금 했던 사고는 했는지도 모르게 되어버리는데 항상 나는 당면한 문제에 크게 괴로워하곤 했다.


할아버지 내외가 파는 폭죽을 사들고 터지는 불빛을 보니 마음이 좀 풀렸다. 당장의 상황에 매몰되어 있을 땐 바다로 오는 게 큰 도움이 됐다. 매일 혼자 오던 바다를 동생과 함께 오니 혼자선 괜히 처량해 보이는 폭죽도 터뜨릴 수 있단 게 행복하게 느껴졌다. 혼자 먹던 밥도 동생과 함께 먹으니 새삼 그들의 존재가 고마웠다. 우주에 혼자 떨어진 것 같은 나를 그들이 인공위성처럼 잡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에게 배신당할 때마다 그래도 동생들은 날 배신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살아가는 동안 앞으로도 배신당하겠지만 그럼에도 배신하지 않을 누군가가 있을 거란 기대를 버리진 못한다. 나도 죽을 때까지 날 배신하지 않을 사람과 가족을 꾸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