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홍상수 영화가 좀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젠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왜 부르는지 알겠다. 처음에 공감 갔던 건 여교수가 외롭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는데 사회적 지위도 있고 돈도 있는데 여행을 가서 좋은걸 함께 보지 못해서 돈을 안 쓴다고 하는 장면이 내 미래가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뒤이어 김민희가 ‘누구 만나는 사람 없어?’라는 질문에 ‘없어요 혼자가 편해요 평화롭고’라고 치는 대사도 무언지 정확하게 안다. 사제간으로 얽힌 교수와 김민희의 서로 칭찬하는 클리셰도 너무 뻔한데 결국 이 모든 장면이 너무 내 일상이고 내가 친구에게 토로하는 ‘외로워’도 결국 그에겐 통속적으로 들렸겠구나 참 그랬다. 나만이 겪고 있는 외로움인 것 같은 감정은 결국 모든 사람이 겪고 있고 그래서 영화에서도 표출되지만 그들이 겪는 외로움을 나와 같다고 인정하긴 싫은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같다.
극 중 연출은 여자와의 삼각관계로 그만두는데, 그중 한 여자에게 다시 와서 ‘유학 갈 테니 같이 가자’라고 하는 것도 객관적으로 보면 진심인 남자가 동시에 여러 여자에게 플러팅 하지 않음이 분명한데, 고백을 받은 여자 입장에선 그걸 진심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은 거다. 사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객관적 진실보다 본인이 믿고 싶어 하는 걸 믿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이다. 당사자가 진심이 아니어도, 고백받는 수취자가 진심이라고 생각하면 관계는 성립된다. 받는 이는 그걸 사랑으로 포장할 뿐이다.
김민희가 삼촌한테 ‘교수님이랑 잤냐’고 묻는 게 너무 노골적이어서 웃겼다. 그걸 또 권해효는 처음에는 부정하고 2번째 물었을 때 인정하는 것도 솔직해서 좋았다. 또한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촌극은 망했지만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느냐’는 질문에 각자의 대답도 설득력이 있었다. 나처럼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도 있었고 아직 뭘 원하는지 모르겠단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길을 계속해서 찾을 거라 했고 누군가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매스컴이나 일상에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데도 관계를 지속하는 수많은 케이스를 보며 나 또한 내가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건 너무 어렵게 느껴지며 이제는 사랑이란 게 책임감 또는 상대에 대한 끝없는 희생이나 헌신인 것처럼 더 여겨져서 누군가에게 쉽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확신을 가지는 것도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나는 나에게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극중 여자애도 그런 대답을 했다.
김민희가 왜 큰 나무이파리를 펄럭펄럭 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별 이유 없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건 내가 파도를 응시하거나 물수제비를 뜨는 것처럼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민희가 ‘삼촌 담배 있어?’라고 묻는 것과 가족사이에 이혼했는지도 모르는 것과 사실 ‘가족’이란 의미도 서로의 근황을 모를 만큼 퇴색된 것이 현대인걸지도 모른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필부필녀의 삶을 이리 가까이 조망할 수 있단 점에서 명성을 얻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