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뒤가 지금과 같을 거라는 불안감, 막막해지고 말아서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면서도 머릿속은 마치 연막탄을 퍼뜨린 듯 뿌옇고 어지러웠다. 보통 걸으면 생각이 좀 정리가 되는데 오늘은 정리도 되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념은 계속 이어지는데 어떤 연관성은 딱히 없었다.
대학교 이후로 이어지고 있는 인연은 없다. 예전에는 만나고 헤어짐에 큰 상실감을 느끼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회자정리거자필반. 이젠 그리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헤어지게 된 사람에게 아직 증오가 느껴진다면 잊지 못하는 건가. 어떤 인연도 꼭 아픔을 주었고 그건 시간이 지나도 강렬하게 고통스럽다. 마치 성공한 사람들이 '본인의 젊은 시절로 돌아갈 거냐'라고 물으면 손사래를 치는 것처럼.
어차피 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걸 지난 시간 동안 배웠다.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타인에게 기대려고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다. 삶은 대부분의 순간이 고통인 걸 알고 난 뒤 아이를 갖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렸다.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단 걸 알면서도 그걸 초월하려는 사람- 은 아직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큰 캔버스를 엉망으로 만들고 싶어 진다.
흘러나온 Classic FM에선 라흐마니노프의 피협 2번을 그가 정신병에 시달리면서 완성했다고 하는데, 삶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고통과 그걸 이겨냈을 때 상응하는 명성과 인정을 가져다주는 게 버겁게 느껴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