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주말을 공부해야 하는데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했지만 하고 싶은 걸 하려면 따야 하는 것이었다. 날씨가 좋았으면 더 갑갑했을 텐데 어제는 비가 왔고 1 회독을 했다. 하지만 하는 중간에도 하기 싫어 딴생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시험장에 갔다. 옆동네지만 꽤나 멀어서 40분 정도 걸렸다. 운전을 하면서 무의식 상황에서의 생각을 좋아한다. 골라놓은 음악을 들으면서 가는데 뭔가 음악이 신나지가 않았다. 시험을 봐야 하는 것 때문이었다. 아이큐를 테스트하는 시험은 잘 볼 수 있지만 오늘같이 외워서 봐야 하는 건 쥐약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서도 건성건성 했다.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는 중간엔 햇볕이 강해서 캡모자를 가져온 게 다행으로 느껴졌다. 첫 문제는 잘 풀 수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모르겠었고 운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시험을 마치자 허기가 몰려와서 유명하다는 홍운장에 가서 짜장면을 먹고 싶었으나 갔을 때는 휴일이었다. 네이버에는 영업 중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단골은 초밥집도 휴무라고 해서 처음 가보는 생선구이 집에 갔다.
주차장이 넓고 테이블링으로 대기를 해야 했다. 지방에선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기에 박완서 수필집을 읽으며 기다리니 꽤나 빨리 순서가 되었다. 직원은 친절하게 인원수를 묻고 곧 반찬을 가져다주었다. 미역국의 온도가 뜨끈해서 좋았다. 제철인 전어구이는 내장을 잘 제거하여 비리지 않았고 가시가 연해 씹어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니 충족감이 들어서 쿠폰으로 받은 스타벅스커피도 야무지게 DT에서 픽업했다.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가는데 바람이 많이 불었다. 차창을 열고 바람을 느끼니 가을의 한 자락에 있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차창을 통해 나뭇잎이 흔들리며 쏴아 하는 소리를 냈다. 쇠락의 계절에 모든 스러져가는 걸 보면 슬펐다. 생성하는 것보다 소멸하는 것에 더 마음이 갔고 그건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다는 유한성 때문이었다. 끝나버린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히 그 관계에서 스러져가는 시점이 있었는데 그게 끝이라고는 생각 못했던 시간은 뒤돌아 봤을 때 바로 그 순간이 헤어짐이었다. 계속해서 A와의 마지막 관계에서 '네가 돈이 많으면 그 돈을 내게 써 내 돈 가져가지 말고'라고 고함치던 내가 백남준의 모션처럼 반복되었다. 그건 지워내려 해도 지워지지 않아 또 시간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
분명히 삶을 더 잘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던 때가 있었다. 바닥을 치고 올라오던 때였다. 하지만 또 뫼비우스의 띠를 반복하는 것 같은 기시감은 계절마다 날 괴롭혀왔다. 집에 돌아와선 소파에 누워 잠을 잤다. 혼절한 것처럼 잠자다 깨면 어스름한 깜장이 창에 서려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밖에 나가 오래 걸었다. 수많은 끝에도 끝나지 않은 B를 오래간 생각 했다. 그가 그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십 년 전의 나는 좋아하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지만 시간은 그런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그가 보고 싶다/ 만지고 싶다/ 그의 체취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 속을 헤집어놔 우두망찰 했다. 그와 사랑의 결실을 맺어도 이런 감정이 계속될 수 있을까? 아마 종결되지 않은 것이라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일 테다. 갈망으로 가득 찬 마음이 끝내 지겨움과 벗어나고픈 마음으로 변질되는 걸 보는 건 더 괴로울 거 같아 그를 나만의 마음속에 꽁꽁 가둬두고 오래 그리워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