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에 한 번씩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보러 간다. 천안터미널에서 어머니를 픽업해 요양원으로 갔다.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 봐 과속했는데 결국 잘못된 길로 들어서 시간이 더 걸렸다. 어머니가 저기 멀리 서 있는데 내 눈에는 어머니만 보였다. 어머니를 픽업하고 트렁크에 캐리어를 실었다. 올 때마다 식자재를 한가득 들고 오기 때문에 겨우 실을 수 있었다. 천안에 오면 항상 호두과자 생각이 나서 한 봉지 먹으면서 갔다.
날씨는 을씨년스럽고 추웠다. 도착해서 요양원 안으로 들어가니 훈기가 돌았다. 어머니는 안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갔는데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엄마 왜 울어' 내 어머니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묻고 있었다. 뒤따라 들어간 나는 할머니가 울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건 할머니의 무력함 때문이었는지 어머니가 온 것에 대한 안도감이었는지 본인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었는지 지나간 일에 대한 회한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난 그저 어머니가 할머니를 달래는 것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점심을 하러 갔다. 15km를 이동해 도착한 곳은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할머니가 몸을 옮기는 걸 힘겨워해서 차에 탈 때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내릴 때도 최소한 걷게끔 가까이서 내려 드려야 했다. 그래도 '차 좀 가져와라'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은 어떤 기쁨마저 가져왔다. 그녀의 편의를 위해 내게 요청하는 것과 그에 기꺼이 응할 수 있단 게 안심되었다. 내가 차에서 내려 차 문을 열면 어머니가 할머니를 부축해서 걷는 게 용감한 호위무사가 된 것 같았다.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그저께 왜 돈이 다 없어졌다고 전화했어. 돈 찾았어?' 어머니는 그런 할머니가 걱정돼 나를 대동하고 오늘 요양원에 온 것이었다. 그 돈이 할머니가 평생에 걸쳐 농사를 지어 시장에 나가 한 푼씩 모은 거란 걸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니의 몸과 정신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 그녀가 가진 땅을 모두 팔아 자식들에게 엔 분의 일 해서 나눠주었단 것도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돈이 없어졌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말을 한 것도 기억나지 않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당에 가서 할머니에게 황태를 작게 잘라주고 누룽지를 만들어 주다가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왔다. '인증샷 찍어줘'라고 말하는 어머니께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렸다. 종이처럼 얇아져버린 할머니에게 어머니는 '엄마, 창밖 보니까 좋지?'라고 말했다. 할머니를 내려주고 어머니를 역으로 데려다주는데 그녀가 말했다. '저 은행나무 봐 너무 예쁘지 않니?' 터미널에 다 왔을 때 '주차하려면 힘들잖아 그냥 여기서 내려줘'라고 말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나는 참아왔던 눈물이 났다. 다 가을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