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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Oct 12. 2024

그녀의 삼만 원

어머니는 수술을 안 하겠다는 말을 듣고 난 후 '내가 갈까?'라고 물었다. '날씨도 흐린데 뭐 하러요' 여느 때처럼 퉁명하게 말하자 그녀는 말했다. '가서 줄 것도 있고'라고 했고 '그럼 오세요'라고 하자 그녀는 '알았어'라고 했다. 내가 불친절해도 어머니는 항상 내게 을이니까 노력을 안 하게 된다.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걸 어머니로 부르는 것도, 반말해도 되는걸 경어체를 쓰는 것도 그런 걸로부터 더 편하게 막 나가는 나의 모습을 어느 순간 발견한 때부터였다.


마침 추적관찰을 하자는 닥터의 말을 듣고 나오는 순간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이제 50분 뒤면 도착한대' '예'라고 대답하자 긴장되었던 것이 풀리는지 급격히 허기가 졌다. 그때까지 먹은 건 믹스커피 한잔과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한잔. 1층에 대구탕을 파는 곳이 있어 혼밥을 했다. 어머니가 올 때까지 기다려서 같이 먹으면 적적하지 않고 좋았겠지만 그때까지 배고프면 예민해질 것 같았다.


식사장소로 갔더니 의외로 식당은 한산했고 대각선 테이블에는 왕년의 한가닥 하셨던 할아버지들이 모여 민원이 어떻고 나 때는 육하원칙으로 했다는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직원을 '아줌마'라고 쌍스럽게 말하는 그를 보자 왕년에 한가닥은 무슨 어디서 굴러먹다가 친구들 앞에서 잘난 체 하는 아재네 생각하며 흘끗 봤더니 역시나 관상사이언스인지 회사에서 악명 높았던 정본부장과 인상이 흡사했다. '관상학을 공부해 볼까'생각하며 식사를 마치고 또 커피를 마셨다. 유독 한 가게가 사람들이 꽉 차있었고 앉을자리를 두리번거리자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뭐야 나 오늘 좀 괜찮나?' 자뻑에 빠져 테이크아웃해서 나오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날 보자마자 '아니 오늘은 사람이 왜 이리 많대니'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주말에 내려왔던 어머니는 내 평일수술일정 때문에 오늘 연가를 낸 것이었고 사람들은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인근의 직원들이 다 나와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그런 광경은 희귀해서 의아했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많아지니 이상하게 느껴졌다. 모든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캐리어를 끌고 가는 나와 딱 봐도 모녀관계로 보이는 사람이 그들 사이를 가로질러 가니 그들도 괜히 한 번씩은 쳐다보는 것 같았다. '빌딩에 주차해 놨어요'라고 트렁크에 캐리어를 들어 올려 넣으니 역시나 돌같이 무거웠다.


어머니는 '먼저 밥 먹었다고? 그럼 집에 가서 먹어야겠네.'라고 말하며 집에 도착하자 캐리어를 열고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고구마순김치와 꼬리곰탕, 멸치같이 건강에 좋은 걸 꺼내며 '배달음식 너무 많이 먹지 마. 플라스틱이 다 녹아 나오잖아'라고 했다. 퇴근하고 오면 요리를 할 여력도 없어 간신히 어플로 주문하고 마는 나지만, 얼마 전 주문 건에 플라스틱맛이 나는 음식을 먹고 난 다음부터는 다시금 '엄마말을 잘 듣자'모드가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고는 '오늘을 금방 가봐야 돼. 동생 밥도 챙겨야 하고'라며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가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항상 한 시간을 보러 왕복 6시간을 움직였다. 그런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난 어머니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걱정으로 악몽까지 꿨다는 그녀를 보면 미안하고 고맙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다가 슬퍼진다. 어머니의 음식들은 항상 다 먹지 못할 만큼 많았고 그게 부담스러우면서도 그녀가 내게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 생각하면 군말 없이 받게 된다.


어머니를 정류장에 데려다 주자 여느 날처럼 내게 3만 원을 건네주었다. 버스비 같은 거 내가 낼 수도 있는데 자식한테 어떤 금전적 손해도 끼치기 싫어 그만큼을 돌려주고야 마는 어머니는 항상 그랬다. 누구는 부모가 집을 사줬다 돈을 줬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그런 걸 해주지 않아도 된다. 이미 넘치는 사랑을 그녀에게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만 원에는 그런 어머니가 평소에 하지 못하는 '사랑한다'라는 말이 농축되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아무리 현실이 엉망진창이고 포기하고 싶어도 악착같이 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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