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아 Nov 30. 2024

그의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다

아침부터 보스는 시비를 걸었다. '그거 노트북 반납했어?' '아 정리할 게 있어서 이후에 하려고요'라고 선배는 말했다. 또 시작이었다. 그는 기분이 안 좋으면 여느 날과 같이 직원을 이름으로 부르면서 트집을 잡았다. 선배는 노트북을 피씨로 쓰면서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질 때까지 쓰고 있었는데, 보스 입장에서는 13인치 화면을 거북목으로 쓰는 것도 안 좋게 보이고(화면보호기를 써서 전혀 안 보인다) 보안부서인데 그걸 외부에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점심을 아무도 보스랑 먹고 싶어 하지 않아서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집으로 밥을 먹으러 다녀왔다. 돌아왔을 때 미리 자리에 앉아있는 걸 보니 혼자 먹거나 안 먹은 모양이었다.(추측이다) 그러자 그는 또 시비를 걸기 시작했는데 내 윗직급을 역시 이름으로 불렀다.

'저번에 회의하면서 만들라고 한 메뉴구성도 그렸어?'

'아 그거 잠시만요'하더니 그는 업체에게 전화를 했다.

'아 그거 보내셨다고요? 며칠?'이라고 하며 통화가 끝나니 보스가 말했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라고 짜증을 섞자 담당자는 보스가 화장실 갔을 때 '도대체 뭘 하란 거야'라고 옆사람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그가 기분 안 좋으면 팀원을 돌려가며 조지곤 했는데 날씨 때문인가 가정에 일이 있으신가 하루종일 저기압이었다. 그다음엔 기안을 올린 나였다.

'사전검토 절차가 어떻게 되지?'

몇 번을 올린 기안이건만 올릴 때마다 상위에 올려서 수정사항 내려오면 각 부서에 전달해 주는 게 역할이란 걸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지 내게 물었다.

대답하자 그 입장에선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뒤이어 '내일 외근 올렸습니다'하며 '사무실에 출근했다 같이 가실 건가요?'물었다. 사실 같이 가기 싫었고 그도 싫을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의사를 물어본 건 그가 차가 없기 때문에 배려해서 물어본 건데 그는 상위로 바로 가겠다고 했다.




그 이후에 기안을 올린 후배도 문구 하나하나를 지적하며 계속 트집이었다. 그는 연말이라 시스템구매기안을 올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세한 부분은 평소에 노룩패스하면서 오늘 같은 날은 꼬치꼬치 물어 납득이 안되면 다른 부분도 집어 말하는 사람이었다. 후배는 완전히 지쳐버렸는지 조퇴를 쓰고 가버렸다.


다른 후배도 이런 사무실 분위기에서 더는 있을 수 없었는지 가차 없이 조퇴를 쓰고 가버렸다. 상대방에게 잔소리를 하는 걸 옆에서 듣는 것도 아주 곤욕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 또 내게 토스가 왔다.


'내일 회의자료는?'그는 어투에 짜증을 묻어 말했다.

'메일로 보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쪽지로 보내'라며 또 명령조였다.

본인이 내가 보낸 메일을 확인도 안 하고 담당자를 조질만큼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였다. 나같이 권위에 쥐약인 사람은 본인을 먼저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타인에게 감정을 푸는 사람을 하급으로 본다. 메신저로 보냈더니 '추가과업은 어딨 어?'라고 묻는 것이었다. '뒤에 있습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불안을 풀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불안이란 내일 상위 담당자(얼마 전 바뀌었다)에게 깨질게 두려워서이다. 그 또한 옛날사람이라서 상위가 어떻게 하위기관을 닦달하는지 다년간 경험으로 익혀왔고 그 경험이 그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 분위기에 동화되어 같이 싸우거나 아니면 조아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차분했다. 그가 그의 걱정 때문에 직원들을 핀잔먹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덤덤하게 대답할 수 있었고 그는 뒤이어 말했다. '지금 현재 진행상황이 어떻게 되는데'라고 물었고 나는 그 말에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열을 내고 싶은 거지 과업을 알고 싶은 게 아니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순간 텀을 둠으로써 그가 본인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는 말했다. '그 사업 데이터 전달했고 거기서 가공하고 있는 거 쓰면 될 거 같고'라면서 말이다.




과거에는 그런 분위기에 동화되는 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타 팀장이 우리 팀장에게 와서 감정을 실어 쏘아대는데 우리 팀장이 한치의 동요도 없이 대답하는 걸 보고 나는 바뀌었다. '그 사람의 감정은 그의 감정일 뿐이야'라고 생각하자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오늘의 경험은 마음의 한없는 평화를 가져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