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스러운 모임의 이유

by 강아

모임을 가기 전부터 기대가 됐다. 하지만 내가 만족감을 느낄 때는 기대 없이 갈 때였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사실 기대가 됐던 것도 전 모임에서 친하게 된 동갑과 같은 조가 될 거라는 것 때문이기도 했다. 이상하게 그랑 이야기하면 의례적으로 웃는 웃음이 아닌 신선해서 웃는 진짜 웃음이 나왔다. 언젠가 봉사활동을 했다고 그에게 말했을 때 그가 진심으로 감동한 듯 경청하는 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빠르게 저녁을 먹고 장소로 가니 그가 맞이해 주었다. 그는 모임 전 연락을 해왔다. '네가 쓴 소설 궁 궁금한데 이야기해 주면 안 돼?' '안돼'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쓴 소설은 마음속에 잊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쓴 이야긴데 그에겐 말하기 싫었다. 얼마 만난 지 안된 사람에게 섣불리 내밀한 걸 말했다가 상대방에 그 상처가 두려워 도망쳐버리는 것도 신물이 났다. 그때부터 비밀은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무른 그는 이런 내 상처를 말해도 도망가지 않고 감싸줄 걸 알고 있었다. 그런 건 느낌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차 묻는 그에게 '비극이라 안돼' '다른 사람 있는데 선 말할 수 없어' 계속 거절을 했고 그런 이후 만나게 된 모임이었다.


'잘 지냈어?' 어색한 인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그에게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자리 안내해 줄게'라고 하더니 알려주었다. 간 자리에는 그의 흔적은 없었다. 예전 모임에서 인사만 했던 여자와 어디에나 있을법한 뿔테 안경의 착실한 st가 옆에 앉았다. 괜스레 가져온 책의 이름을 물으며 시간을 보내다 모임구성원이 다 모였을 땐 내가 가장 연장자 같았다.




모임은 카드를 뽑으면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이었고, 그중 올해 가장 잘한 일을 묻는 카드가 나왔다. 남들이 '일에 충실한 거요' '힘 빼는 연습한 거요'라고 대답할 때 '손절한 거요'라고 대답했다. 정말이지 올해 가장 잘한 건 지지부진 끌어왔던 친구라고 부르던 그를 내친 것이었다. 항상 내가 희생해야만 하는 관계, 그의 스케줄 종료 시간에 맞추어 그가 있는 장소까지 가면 그는 또 학원일정으로 딜레이 됐다고 했었다. 처음에는 그에게 가는 시간 삼십 분 정도는 내가 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도 내가 힘들 때 돈을 썼기 때문이기도 했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는 무작정 잘해주고야 마는 내 미련함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당연함으로 다가왔을 때, 그것이 나중에 선을 넘는 무례함으로 왔을 때는 'its over'라는 단어만 뇌리 속에 명징했다. 그는 계속해서 미안해했고 그의 사과를 받는 문제가 아니라는 건 직감적으로 느꼈다. 내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어떤 회유와 연락을 해도 무응답으로 대답한다는 것이 내 대답이었다.


어떤 모임에 가도 내가 어떤 대답을 했을 때 방향은 그쪽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숱하게 했다. 사람들은 해당 공간의 에너지 파장에 따라 움직인다. 그건 내가 바꿀 수 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는 똑같이 누군가를 손절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가 듣는 음악이 그녀를 움직여서 만나게 되었다가 결국 헤어지곤 만 이유는 그녀 또한 사람을 볼 때 보고 싶은 것만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랬었지. 그만이 지니고 있던 고유성으로 그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그를 끼워 맞추고선 내가 찾아왔던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을 때가 있었다.




모임을 마쳤을 땐 첫 모임과 같은 유쾌함이나 후련함보다는 찝찝함이 남았다. 친해지고 싶던 그 아이를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아이'로 지목하고 나선 이건 그 친구가 없어서였던 것인지, 모임에 대한 기대가 커서인지 망가진 뇌리를 안고 집에 돌아와 긴 잠으로 혼곤히 빠져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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