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했다. '데려다 줄게요'
그는 섬세하고 확정적인 어투를 썼다. 회사에서 실수하면 잘못을 감싸주는 사람이었다. 그건 어렸을 때 어른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과 흡사해서 다시금 뭐지 하고 생각하게 됐다. 깨끗한 건 더럽히고 싶다. 사회적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의 내밀한 면은 무엇일까 상상하게 된다. 어쩌면 전혀 되지 않을 대상을 욕망하면서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거니까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그는 동료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 때문에 선 긋던 것을 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둘이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표면적인 대화만 하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 같은 사람이 현실은 권태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어서, 사실은 일탈처럼 이벤트가 일어나기를 속으로 바랄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현실을 숨 못 쉬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그럴 수도 있다. 그냥 상상해 보는 것이다. 절대 신체가 부딪힐 일 없지만 부딪혔을 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름다운 모습을 했을 때 그의 눈빛이 흔들렸던 것을 떠올려 보는 것.
어두운 밤 집 앞에서 내려주며 내가 걷는 것을 오래 지켜봤을 것이다. 그랑 있으면 오히려 말하지 않아 주어서 고마웠다. 쓸데없는 말로 허공을 채우는 것보다, 배려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 말이 정말 좋았다고. 이런 건 말하지 않아도 알까? 그 무엇도 망가뜨릴 수 없는 견고한 걸 보면 부숴버리고 싶어 진다. 괜히 툭툭 건드려보고 싶은 것.
백치라는 소설에서, 양딸로 맞아 온갖 사교계의 예절과 문화를 다 가르쳐놓고선, 그를 여자가 되게 한 후 다른 집안에 팔아버리려고 하는 그, 그리고 잃을 것이 없어 막 나가는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은 그렇기 때문에 어떤 괴랄한 행동에도 아름다워 보일 수 있게 한다. 잃을 것이 없는 누군가의 모습은 그렇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 있다. 예전 그도 나의 그런 모습에 흥미를 느꼈던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젊음을 소모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음날에 눈을 뜨니까, 한없이 권태로웠고 그래서 어떤 절망에 닿아있기도 하던 날들. 생각이 거기로 옮겨가다 보면 마치 악몽을 꿨을 때보다 더한 구토감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그를 생각하는 것은 갖지 못해서이고, 그 또한 날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불현듯 생각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