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뢰한, 단절, 사랑

by 강아

무뢰한을 보고 이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누구일까 찾아보니 오승욱 감독은 미학을 전공해서 점심시간에 도서관 가서 책을 빌려왔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가시적 성과가 안 나오니 답답한 나날이다. 본인이 업무를 모르니까 본부 들어와서 보고하라는 사무관이 갑질하는 것 같아 화가 났지만 인생은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불행이 아니면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옆팀상사가 우리 팀 상사에게 내 업무예산 분장을 나눴다. 돈을 더 주겠다고 하니 못쓰겠단 반응에 '어차피 줘도 안 쓰겠다고 할 테니 제가 써야죠'라고 그냥 상황을 받아들인다. 예전엔 절대 내가 아니어야 한단투로 싸웠겠지만 이제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연예인 부모를 둔 자제같이 돈이 많은 사람은 전공으로 예술을 한다. 사업체를 가진 부모 밑의 자식도 그렇다. 나는 그러지 못해서 어릴 때부터 그런 것에 갈망 내지는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지니고 살아왔다. 다만 이젠 인생을 그런 식으로 후회하면서 살기 싫단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여러 시도들 중 희망이 보이는 게 있으면 전직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한다. 날 지지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한다. 그렇지 않은 관계는 손절한다.




어제도 관계를 단절했다. 만날 때마다 본인 위주고 막상 내가 아플 때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던, 내 이야기를 듣지 않던 관계를 그가 똑똑하다는 이유로 4년을 붙잡고 있었다. 그런 애 하나 옆에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란 마음에서다. 하지만 이게 내가 혐오하던 친구의 모습-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 도움을 받을 존재로 기생하는 것-과 다를게 무엇이란 생각에 아득해졌다. 결국 타인의 경멸하는 어떤 모습은 내 안에 그 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걸 테다.


- 인간관계도 유효기간이 있더라. 여기 까진 거 같네. 잘 지내

- 언제든 돌아와


가 그가 한 말이었다.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옅어질걸 안다. 하지만 충동적인 감정으로 관계를 끊은 건 아니었다. 사람은 어떤 시점이 오면 그동안 지지부진 끌어오던 관계를 그만둬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래도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경험한다. 이유는 체면, 기회비용, 그 사람이 가진 장점, 등이 있겠지만 그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없는 게 생기면 그 관곈 끝이 된다.


이런 경험 수도 없이 많이 했지만 이번 경험은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 20대엔 사람이 좋았고 30대로 접어들면서는 사람이 싫었다. 진심을 얻기 위해선 내가 마음을 보여야 되지만 어김없이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올수록 점점 회의적이 돼 간다. 얼마 전 모임에서 만났던 그가 '이제는 조금 부정적이에요'라고 말한걸 처음 들었을 때는 '이 사람 다크하네'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은 '그도 어쩌면 수도 없이 배신당하는 경험을 했겠지'란 마음에 연민이 든다.


마찬가지로 티 없이 순수한 그를 봤을 때는 '너무 바보 같아서 당하고만 살' 위인 같았다. 하지만 그런 그라서 사랑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계산하며 하는 건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을 닫게 된 건 살아오며 겪었던 수많은 경험 때문일테고, 그가 마음을 열지 못하는 걸 비난할 수는 없는 문제라는 생각 했다. 나조차도 자기희생적인 사람을 안쓰럽게 바라보는데 사랑을 할 수 있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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