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알게 된 것

by 강아

집에 먹을 게 없어서 장을 봤다. 불법주차하는 거랑 주차장에 주차하는 것과 5분도 차이 안 날 텐데 나는 늘 서두르곤 했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장을 보니 회차시간도 지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장을 봤으면서 왜 그리 일상이 바빴을까. 집에 양배추가 있어서 라페 해 먹으려고 레몬즙과 머스터드와 연두를 샀다. 결국 한번 쓰고 한몇 개월 뒤에 쓸 걸 알면서도 음식값보다 비싼 조미료를 사는 건 비효율적이지만 요리는 그렇게 따지면 비효율적인 행위였다. 양배추를 채 썰고 재료를 넣어 버무려서 시간낭비했다. 입이 짧아서 다 먹을까도 모르겠다.


모든 걸 효율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요리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장을 보는 것부터 재료를 손질하고 레시피에 맞게 요리하고 불조절과 시간조절이 필요한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요리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던 내게도 '이래서 사람들이 요리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때는 누군가를 위해 요리할 때였다. 누군가보다 나를 제일 먼저 사랑해야 된다지만 왠지 나를 위해서는 요리를 잘 안 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가 맛있게 먹어주는 게 좋아서, 공치사를 들으려고 할 테지만 그렇다고 애인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머니는 집에 올 때마다 밑반찬을 가득해 온다. 먹다가 지쳐 버린 적도 수회다. 하지만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는 걸, 어머니가 그럴 때만이 그녀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부러 음식을 거절하지 않게 됐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라고 물을 때 응당 대답해야 하는 게 제일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지만 왠지 그러긴 싫다. '없어요'라고 말하지만 매번 한가득 음식을 싸들고 오는 건 생각해 보면 그만큼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다 싶다.


누군가가 날 사랑하는가를 판단할 때 그가 해준 물건이나 돈 같은 걸로 가늠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런 게 사랑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도 됐다. 그런 건 어찌 보면 자기 우월을 보여주는 과시일 때가 있었다. 결국 그 모든 게 변하고 스러지고 결국은 남이 되는 시간 동안,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고 고통받고 성장하는 모든 시기에 언제나 내 곁에 있었음을 이제야 안다. 타인에게 사랑을 구걸하기 전에, 어머니의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의 위대함을 알았더라면 그때와 같은 과오는 없었을 텐데 이미 지나간 일이다. 누군가에게 외로움을 호소하고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을, 어머니는 반대로 오지 않는 내 연락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누군가 내 옆에 없다 해도 고독이나 단절감은 느낄 필요가 없는 게 된다.


이제야 어머니와 내가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져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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