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by 강아

난 성격이 매우 급하다. 날 잘 모르는 사람은 내가 엄청 유하고 느리고 차분한 걸로 알고 있지만 그건 내가 겉으로 티를 내지 않기 때문이지 속내는 활화산이다.


유년시절에 피아노를 배울 때도 난 매우 급했다. 선생님이 동그라미를 연습하라고 열 번 쳐서 주면 7번 치고 열 번 쳤다고 하기도 일쑤였다. 그것뿐만 아닌 다음 레슨 때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경우라도 생기면 나는 그게 억울해서 피아노방에서 눈물을 질질 짰다. 그건 빨리 다음걸 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속상함,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선생님에 대한 원망, '빨리' 곡을 완성해야 하는데(그거 완성하면 뭐 하려고? 결국 다음 곡을 칠 것이고 그건 무한 반복되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실망감 등이었다.


오만하고 자기 고양이 월등했던 나는 그런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되면 툭하면 학원을 옮겨 다니는 학원쇼퍼로까지도 진화했는데, 그렇게 다니게 된 학원이 10개가 넘었다. 정착하게 된 선생님은 이런 내 성질머리를 잘 알고 있어 그나마 오래 다녔던 것 같다. 학원을 옮길 때 '선생님 실력이 별로라서 여기 왔고요'라고 하면 원장은 '잘 오셨습니다. 여기는 기존학원이 충족해주지 못한 것들을 해줄 수가 있어요'라고 원장은 말했다.


그때즈음에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반작용으로 피아노로 옮겨 갔다. 어쩌면 피아노를 전공할 수도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그러지 못한다는 열등감, 분명히 나보다 못 치던 아이는 대학입시에 피아노과를 쓴다고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한다는 자괴감, 현저하게 수능입시에 써야 하는 절대적 시간이 증가할 때 나는 학원으로 달려가 그야말로 미친 듯이 피아노를 쳤다. 그럴 때면 시간이 왜 그리 빨리 가는지 얼마 하지 않은 것 같은데 2시간이 지나있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시학원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다.


체육시간에 강당에 있던 피아노를, 체육선생님이 내가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걸 알고 쳐보라고 할 때도 그때와 같은 희열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앞에 한 반의 아이들이 모두 구경하고 있어도, 나는 피아노와 단 둘이 존재한다는 공간감각의 왜곡과 같은 느낌은 그럴 때마다 피아노를 열망하게 됐다. 그러고 보면 나는 수능이 아니라 피아노입시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음악은 돈이 없으면 안 돼, 그거 해서 뭐 먹고살려고?' 하는 어른들의 말은 얼마나 현실안주적이었는지,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모임 가지 않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