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이 터졌다

by 강아

입술이 터진 건 일주일 전이었다. 그날은 역시나 텅 비어버린 냉장고를 보며 먹을 게 없는지 보고 있었다. 진즉에 어머니가 가져다준 음식은 상해서 버리고, 배달 음식으로 충당하기도 버거워진 시점이었다. 요리를 할 때마다 나오는 설거지거리에 질려버린 나는 간단하고 배를 채울 수 있는 천연재료로 만든 음식이 필요했는데 보인게 계란이었다.


달걀은 누가 해주면 잘 먹지만 내가 하면 왠지 싫다. 가게에서 나오는 계란프라이는 좋은데 내가 하면 모양을 망칠뿐더러 노른자 익힘 정도도 완숙이 되고 만다. 반숙을 하려다가는 기어이 터지고 만다. 끓는 물에 삶은 달걀은 또 싫다. 닭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서이다. 타협한 것이 밥솥에 찌는 것이었다. 그럼 닭냄새가 덜 난다. 계란 2개 먹겠다고 그때마다 찌는 것도 비효율적이라 한 번에 6개씩 찌고는 나눠 먹는 식이다.




그날은 전날에 두 알을 먹고 4알이 남아 있었다. 또 찬 음식을 싫어하는 나는 쉽게 데울 수 없을까 하다가 냄비를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전자레인지에 1분 돌렸다. 그렇게 돌린 계란은 뜨거워서 손가락 끝이 오그라는 걸 느끼며 기어이 껍데기는 깠는데, 막 입에 넣으려는 순간 계란이 팍 터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이미 입술에는 노른자가 열기를 내며 튀겨 있었고 갑작스러운 충격에 얼얼해져 왔다. '화상이구나' 생각했고 그날부터 입술은 헤르페스처럼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집안에서 셀카를 찍어보는 나는 그럴 때마다 새처럼 튀어나온 부리 같은 입을 보며 못마땅함을 금치 못했다. 입술 하나 못생겨졌다고 온 얼굴에서 입만 보였다.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느끼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만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인다. 오히려 첫째 날에는 붓기가 그다지 심하지 않고 내 피부가 아닌 감각이 주로 들었다면, 둘째 날에는 눈에 뜨이게 부풀어 오르며 수포가 올라온 게 눈에 보였다. 흉터를 볼 때마다 그때의 날 비난했지만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홍두깨입술이 되어있었고 저녁이 되면 조금 가라앉는 듯도 했다. 하지만 다음날 셋째 날에는 세수를 하는데 부위를 스쳤다고 피가 났다. 그 피도 금방 멈추는 게 아니라 딱지가 되어 점처럼 보일만큼 흔적을 남겼다. 마침 나아갈 때쯤에는 출근일자가 아니었고, 회사에서도 당사자가 아니면 그렇게 눈에 뜨일 만큼은 아니었다. 누구도 내 입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다. 회사 화장실을 통해 봐도 겉으로 봤을 땐 그리 티가 나지 않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내가 제일 불편했다. 가만히 앉아서 몸을 느껴보면 입술에만 신경이 몰려 있는 것 같았고 주말이 되었을 때 학원에 가니 친구만이 그 변화를 알아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모른척했으면 하겠지만 친구라서 물어와 주길 바랐고 그래줘서 고마웠다. 이건 피곤해서 생긴 게 아니라 실수로 생긴 거라고 누군가에게는 꼭 말해야 했다. 그냥 이런 사소한 것을 말할 사람이 필요하단걸 요샌 생각한다.


이제는 거짓말처럼 나아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감각이 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입술을 보며 또 나는 내 신체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갈 테다. 꼭 부정적인 일이 일어나냐면 현재에 대한 감사를 느끼는 건 인간이 어리석다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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