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부문장 면담이 있었다. 예전 같으면 그것에 스트레스받았겠지만 마침 오전에 봐야 할 보고서도 생겨서 보다 보니 면담시간이 되어 다녀왔다. 사람들은 어떤 일 자체보다 그걸 걱정하고 대비하는데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 같다. 순간에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면 훨씬 효율적일 텐데 그 생각했다.
오전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오후에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그러면서 밤에 있을 독서모임 생각을 했다. 막상 올라오는 채팅글도 없는데 계속해서 모임 어플을 열어보게 됐다. 어차피 모임에 가는 게 책을 읽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어서 벌써 이번 주만 해도 6권의 책을 읽은 터였다. 가져가는 책을 고르는 건 블로그에 정리해 둔 글 위주가 되기 때문에, 페르난두페소아의 책을 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각자 가져온 책을 소개하고 발제하는 형식이다. 모임 주제는 아이를 가질 것인가였는데, 나만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그랬다. 6명 중 4명이 그랬으니까. 한 사람은 자기 유전자를 남기기 싫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자기가 살았는데도 힘든 세상인데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제는 결혼으로까지 이어졌는데 또 결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어 동질감을 느끼고 말았다. 다른 모임에 갔다가 계속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 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모임에도 결혼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은연중에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모두 남자였고 그들이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욕구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하는 게 아닌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게 순번이 바뀐 것 같았다.
모임에 참여한 2명은 사랑꾼이었는데, 한 사람은 행복한 가정이 갖고 싶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싸워온 가정환경이어서 명절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가족 간의 우애를 다지는 시간에 혼자 있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가족끼리 모여 싸우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게 훨씬 좋은 건데'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옆의 여자가 본인 가족은 만나도 자기주장들이 너무 강해서 갈등이 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그녀는 거절하는 게 어렵다고 했다. 상대방은 그녀의 입는 옷과 핸드폰을 검사하며 집착했고 그녀는 상대방의 감정을 돌아보느라 본인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어려워했다. 그가 기분이 나쁠까 봐 참다가 끝까지 헤어지잔 말도 그의 입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이별에 응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민이 들었다. 이건 누구와 나를 비교해서 느끼는 우월감이 아닌 감정이어서 그녀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예전 나를 스쳐 지나간 사람도 그랬을까. 그가 내 이야기를 들으며 연민하며 마음을 열어주길 바랐는데 그는 내게 어떤 부족함이나 그로 인한 우월감을 느꼈고 결국엔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꺼낸 발제는 '한밤중에 스쳐 지나가는 배는 모르는 사이로 남는다'라는 문구에서 그렇게 스쳐 지나간 사람이 있는가 하는 물음이었는데, 누군가는 스쳐 지나갈 뻔한 사람을 2년이 지난 후 연인이 되어 곧 결혼한다고 했다. 내겐 스쳐 지나간 사람이 너무 많았는데, 누군가는 해봤기에 후회가 없는 거라고 했다. 본인은 안 해봐서 그런 인연들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모임을 하고 나오니 어떤 충족감이 많이 남는다.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해서였다. 다음에 또 만나고 싶다. 이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