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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파이어를 보고

by 강아

소설가인 그는 다소 편협하다. 친구와 함께 떠나는 길에서 차가 고장 나기 전까지 그는 '잘 모르겠는데'라고 친구에게 말한다. 집에 도착하자 난관은 또 있다. 둘이 각자의 방을 쓰기로 한 것인데 한 명의 여자가 더 묵는다는 걸 친구의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여자는 밤마다 벽간소음으로 힘들게 한다. 남자는 창으로 알몸인데 옷으로 몸을 대충 가린 여자의 남자가 떠나는 걸 보고 아침에는 여자의 뒷모습을 훔쳐본다.


남자는 글 쓰는 사람이고 자기 방이 없기 때문에 마당에서 일한다. 글은 생각처럼 써지지 않고 친구가 수영하러 간 사이에 그는 여자의 방을 훔쳐본다. 그녀가 듣는 LP, 써놓은 일기를 보다가 친구가 오는 소리에 후다닥 다시 마당으로 가서 일하는 척을 하자 친구는 그런 그를 사진 찍는다. 찍지 마라고 하지만 이미 찍은 후다.


친구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하지만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반면 남자는 친구가 수영하러 가자고 하면 '일해야 해' 거절하기 일쑤다. 친구의 권유에 마지못해 따라간 해변에서 남자는 모래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인명구조대인 베르트를 본다. 여자의 남자인 베르트를 친구에게 말하니 친구는 베르트에게 가서 친구가 되고 저녁식사에 초대하기까지 한다.


초대한 자리에서 남자는 베르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명구조원의 월급이 얼마인지 묻고 베르트가 '이 일 하실 건가요'라고 물었을 때 '아니요'라고 말하면서 끝까지 그의 직업성 존엄성을 무시하거나 비하한다. 친구가 '왜 그러냐'라고 하며 자리를 파할 때까지 남자는 왠지 화가 나 있다.


남자는 조용한 글 쓸 공간을 위해 호텔을 방문한다. 직원은 친절하게 '요베 욘슨'이 묵은 방이라며 설명하지만, 그는 전화를 통해 '직원이 요베 존슨'이라고 발음한다며 그녀를 비판한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직원이 '진짜 별로네'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서 있다. 호텔방에는 타자기와 요베욘슨이 쓴 책 등이 놓여 있다.


지붕을 고쳐야 한다고 친구가 말하지만 결국 수리하는 건 베르트와 친구 몫이다. 그는 해변에 산책하다가 여자가 아이스크림을 파는 것을 보고 '땅콩맛이 맛있다'라고 하는 그녀의 말에 끝까지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다. 그는 글을 쓴다고 하고 여자가 보여달라고 하자 거절한다.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고 돌아오다가 굴라쉬를 쏟게 되고 그는 그녀를 도와주다가 글을 보여주겠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가 글을 보여주자 요리 준비를 하던 그녀는 당장 읽겠다며 침대에 무방비의 상태로 읽기 시작하고 그런 그녀를 남자는 다시 훔쳐본다. 그가 상기된 표정으로 소감을 묻자 그녀는 최악이라고 한다. 그는 출판사의 비평 끝에 여자까지 비판하자 돌아버릴 것 같다. 그런 여자에게 '당신은 비평조차 한 게 아니다'라며 무시한다.


출판사 사장이 왔을 때 그와 사장은 마당에서 쓴 글을 소리 내어 읽기 작업에 돌입하는데, 사장은 중요한 전화가 왔다며 통화하러 가고 남자는 불안할 뿐이다. 출판사 사장이 가져온 원고는 많은 부분 난도질이 되어있고 사장은 통화 끝에 여자를 마주해 '같이 식사하자'는 제안에 응하고 돌아온다. 식당을 알아봐 놨다는 남자에게 사장은 집에서 먹는 게 더 좋다고 한다. 베르트와 여자, 친구까지 모인 자리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을 주제로 한 포트폴리오는 출판사사장은 조언을 해준다. 베르트의 의견으로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을 때도 주인공 남자는 '작업이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혹평했지만 출판사 사장은 '글솜씨가 없어서 포트폴리오에 글을 추가할 자신이 없다'는 친구의 의견에 '필요하면 내가 도와주겠다'라고 한다.


가관은 일개 아이스크림 판매원인 여자의 직업을 출판사 사장이 물었을 때 그녀는 대학원생이었고, 박사과정의 논문을 쓰고 있었고 심지어 '아스라'같은 시를 외우고 있는 사람이고 출판사 사장은 그 시를 알고 있다. 그녀가 시를 낭독했을 때 사장은 다시 읊어줄 것을 요청하며 주인공인 남자만 소외된 것 같은 장면을 보여준다.


갑자기 사장은 쓰러지게 되고 병원으로 옮기는 것도 결국 여자가 하게 된다. 남자는 가는 길에 죽은 동물을 마주치며 달려가지만 한참 뒤에야 병원에 도착하고 여자가 대기실에서 스러지듯 앉아 자고 있는 걸 발견하고 그녀의 옆에 앉는다. 처치가 끝났을 때 사장은 '신장결석'이라 말하고 그 말 그대로 믿고 있던 남자는 여자의 '4 병동이 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라고 하고 남자는 정말 모른다. 그것이 뭔지 물었을 때 '암병동'이라고 하자 남자는 뭔가에 얻어맞은 표정을 하고 서있다.


트랙터를 타고 떠났던 베르트와 친구는 화재로 석탄이 되어 돌아왔다. 모든 이들은 슬퍼했지만 남자만은 트로이의 유적이 떠오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느낄 동안에 남자는 공감하지 못하고 어딘가 동떨어진듯한 기분만을 갖는다.


발화하는 시점이 출판사 사장에게로 옮겨가며 그는 새로운 작품을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출판사사장이 그의 작품을 읽는 걸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사장의 '이제 곧 같은 말을 하며 들어올 간병인이 오거든'하자 간병인은 사장이 말한 말투 그대로 들어온다. 병원을 나온 그는 거짓말처럼 그녀를 마주친다.




영화가 끝난 후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버티게 됐다. 그건 글을 쓰는 화자가 나와 너무 비슷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고 하지만 자기만의 세계에만 묶여 있고 주변인과 소통이 없는 모습, 글을 보여달란 지인의 요청에 거절하는 나의 모습, 관심이 가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에 머물러 있는 모습, 남의 비판엔 무시하면서 반대로 남을 비판하기는 잘하는 모습이 크리스티안 감독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어쩌면 문학을 읽는 이유는 나만 그럴 것 같았던 모습이 타인도 그런 모습을 갖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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