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뭔갈 이루면 그로부터 오는 허탈감이 있고, 이루지 못하면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인가 보다. 타인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예산부족현상이 해결되자 이런 감정이 든 것이다.
내가 해결방안을 고심하는 동안 그(실수유발자)가 물었다. '해결된 거죠?' 해결되긴 개뿔 계속 머리가 뜨거워지고 혈압이 상승했다. 점심시간에 그를 봤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리고 있는 날 못 본 척하고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이 뻔뻔하게 느껴졌지만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모른 척하고 있었대도 화가 났을 것이다.
부서장이 그 사람을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 물었고 그는 연말에 예산 남은 금액 쪽지를 내게 보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내가 계약서를 요청했고, 그는 변경 전 계약서를 내게 보내는 통에 예산이 부족한 것을 설명하자 본인의 잘못을 시인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해결방안을 마련하라며 (내게) 소리 지르던 부서장이었다.
'잘못한 사람은 그인데 왜 제가 똥을 치우냐고요'
'그거 하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하고 내가 대답할 틈을 주지 않은 채 부서장은 자리를 떠났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회사생활에 대한 정이 있는 대로 떨어졌지만, 오늘 사건발생자와 마주 보고 상황을 정리하고 부문장에게 보고하니 결국 올해 예산으로 갈음하는 걸로 사태는 너무나 쉽게 일단락됐다.
집에 오면서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내가 아무리 잘해도 타인으로 인해 생겨나는 미스와 그걸 해결하고 난 뒤의 노곤함은 회사생활을 계속하며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건 문제가 있으면 해결방법이 있다는 걸 안다는 것이지만, 그때마다의 진 빠짐은 닥칠 때마다 익숙하지 않다.
봄이지만 가벼운 우울을 앓고 있었다. 이 상황이 계속될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십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변해있었다. 상황에 매몰되기보다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됐고,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상황은 조금씩 변하며 그것이 모여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뀐 미래를 가져온다는 것, 미래를 난 전혀 알 수 없단 걸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