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엔 염세적이 된다. 아침에 회사 갔더니 저번주에 올린 기안이 결재완료가 되지 않았다. 최종결재권자인 기관장이 열람만 하고 결재를 안 하고 있길래 올라갔더니 작년에 물었던 문제를 또 물었다. 발표시기를 앞당길 수 없냐는 이야긴데 행정자료가 +1년 뒤 나오고 해당 모집단을 토대로 조사하면 +2년 뒤 발표될 수밖에 없는 걸 또 묻길래 로봇처럼 대답하고 나왔다.
날씨마저 추적추적했다. 어제부터 비가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등 이상한 4월이더니 오늘도 그랬다. 회사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고 오후에 그냥 시간을 흘려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 시간이라면 회사 밖에서는 피아노연습을 6시간 할 수 있는 양인데, 그걸 회사에서 시급 2만 원을 버느라 앉아있는 게 시간낭비처럼 느껴졌고 이건 근 10년간 해온 생각이다.
고대하던 퇴근 시간이 되어 피아노 학원을 향했지만, 회사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 진은 빠지는 건지 생각했던 것만큼은 좋지 않았다. 매일 연습해도 어제가 오늘인 것 같은 실력과 이걸 하면 밥이 나와? 하는 생각이 열심히 치다가도 딴생각을 하게 한다. 분명 이것만이 길일 것 같았는데, 같은 일을 수없이 한다는 건 사람에게 권태의 시험에 들게 한다.
또 꾸역꾸역 연습을 하고 왔고 집에 오자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 안정적 가정과 자식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것엔 미련이 없다. 그걸 가졌을 때 나를 잃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걸로 더욱 고통받을 날 알기 때문이다. 근데 내가 그냥 그런 인간으로 40대가 되었을 때 내 젊음이 날아가버렸다는 회한을 하는 사람으로 남긴 싫다. 그게 매일을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저 그런 사람이 된다면 날 길러준 부모에게도 못할 짓 일 텐데 계속 답답해지기만 하는 글루미먼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