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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 하지만 계속되는 삶

by 강아

회사에선 8시간 내내 일하지 않는다. 주로 일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이 시간이면 다른 걸 도전하고도 남았을 텐데 이런 생각으로 보낸다. 월급이 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분명 일정한 소득만 있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소득을 위해 내 시간을 파는 느낌이다.


그럼 견딜 수 없어 도서관을 간다. 지적 허영심일까. 회사에선 충족될 수 없는 것들을 부러 '현상학'을 들먹이는 책을 빌리면서 혼자 점심을 먹는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섬세해서 타인과 함께 하는 식사보다 혼자 하는 식사가 편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타인과 함께하기 위해 해야 하는 시간조율, 배려 이런 것 때문인데 얼마 전 타인과 식사를 함께하다 혼자만 먹을 음료를 시킨 나를 보고 흠칫 놀란 적이 있었다. 그들이 먹고 싶었으면 시켰겠지만 그들도 내가 음료를 주문한 후에야 주섬주섬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불만족함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타인과 긴밀한 연결을 원하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살고 있는 현실조차 정작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걸 자각할 때마다 내가 스스로 나를 죽여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감정이 들 때면, '나'를 확인하고자 피아노를 꽝꽝 치거나 몸을 콩벌레처럼 말아서 순간의 호흡을 느낌으로서 살아있는 걸 확인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그 상황에 만족하기보단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늘처럼 별것 아닌 '기획부서에서 내가 하는 사업을 어떻게 표기했는지'와 '예산을 어떻게 쓸 것인지 한 줄을 추가'하는 사항을 수정하고도, 결국 윗사람에게 보고를 안 했다는 이유로 내일 하겠다는 상사를 보면 '그' 자신으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모든 걸 주변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우유부단함을 나타내는 그 사람 자체가 혐오스러워진다. 그런 혐오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나에게까지 이어지고 그건 집에 와서 간신히 토스트를 해 먹고 누워있게 만든다. 요가가 있어 몸을 이끌고 다녀왔지만 이 자괴감은 쉬이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필요한 건가? 막상 사람이 충족되어도 또 다른 결핍으로 다른 욕망의 대상을 찾아 헤맬 것이고 살수록 날 잘 모르겠다. 정말 발리에 가서 요가만 하루 종일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회사를 그만두면 싫은 사람을 안 보게 되어 만족할 수 있을까? 경력직으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만족할 수 있을까? 쓴 글을 아주 많은 사람들이 본다면? 이런 선택지에서 미련하게도 항상 똥을 찍어 먹고 나서야 길을 알았다. 그게 너무 싫었지만, 그게 또 나임을 알아서 자기혐오를 모른 체하고 애써 도닥거리는 것의 반복이다. 누군가에게 말해도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음을 알지만 이제는 이 공간에 감정을 털어놓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결국엔 모든것이 의미 없다는 허망함, 그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살아내야 하는 하루...이런 감정들은 이제 내 피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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