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공고를 내야 하는 날이다. 보통 공고를 내기 위해서는 상위기관의 의견, 계약부서의 의견을 받아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다. 작년과 달라진 점을 포함해 보냈더니 계약부서에서는 기초가격산정과 긴급으로 작성한 부분을 조금 더 앞당겨 6월로 표기하자는 의견을 주었다.
상위는 긴급으로 내야 하는지 물었고 작년의 경우 사업기간이 현저히 짧아 연말까지 하면 1달당 1억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부득이 앞당겼던 것이라 말하니 일반으로 내라고 했다. 또한 예산이 7억인데 왜 천만 원가량을 적게 내냐고 해서 수용비와 여비 명목이라고 했다. 그들 소관이기도 한 사업이라 사업설명회에 참석한다는 것도 오케이 했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상사이다. 그는 내가 모든 부서의 의견을 반영해 전달했을 때 왜 자기에겐 안보여주냐고 CC 된 메일을 보고 말했다. 본인에게 기안할 때는 상위의 의견을 구했냐고 묻고, 상위에 참조 걸 때는 왜 본인한테 안보여주냐고 하는 그의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그의 기분이 안 좋았는지 소리를 크게 내며 화를 내었고, 어떻게든 트집을 잡으려고 달라진 게 뭐냐고 묻는 그의 말에 바득바득 말대답했지만 그는 앞에서는 '반대 의견을 말하는 걸 좋아한다'며 그럴 때마다 빈정상하는 듯했다.
그깟 법 체크 안 하고 계획서 썼을까 봐 계약예규를 들먹이며 말하는데, 그럴까 봐 다 확인해 놨다. 매출액 보관기간이 데이터센터에 2년까진데 왜 5년으로 써놨냐 해서 담당자랑 통화했다고 하니 다시 확인해 보란다.
항상 이런 식이다. 내가 맞는데도 다시 확인하란다. 다시 확인해도 내 말이 맞을 때 그는 말이 없다. 그의 의견을 종식시키기 위해 상위를 말하면 꼼짝 못 하는 걸 알기 때문에(오늘처럼 자존심 상해하긴 해도 결국 받아들인다) '주무관이 이렇게 수정공고 내라고 했다'라고 말했더니 이젠 단독수급으로 낸 입찰공고를 보고 물고 늘어졌다.
단독으로 낸 이유는, 공동으로 들어왔을 때 업체가 산학협력단과 컨소시엄으로 들어와 서로 책임소재를 미루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걸 말했더니 상사는 그건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왜 이유가 안되는지?) 단독으로 할지 공동으로 할지는 담당자의 재량에 따라 할 수 있는 건데 작년에 중소영세업체가 공동으로 열지 못하는 바람에 (심지어 학술연구기관도 아니었음) 입찰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해 진땀을 뺀 적이 있어서 그런 듯했다.
그는 또 계약예규를 들여다보면서 '업종코드를 한정할 수 없나?'며 한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법규에는 일반적인 경우에는 공동수급으로 열게 되어있다며 이유를 계속 찾는 것이었다. 당연히 법에는 그렇게 나와있지, 하지만 내 경우에는 공동으로 열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도 그는 자신의 권한이 뭔지도 모르고 애먼 법만 들여다보고 있는 꼴이었다.
이 작자의 우유부단함과 의사결정장애는 1년간 경험해 왔지만 담당자가 몇 번을 말해도 '안 되는 이유'를 찾기 위한 그의 열정에 조퇴하고 싶었다. 최근 상사와의 갈등과 (실수하고 나몰라라 하는) 인간들에 대한 혐오는 툭하면 조퇴를 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단독으로 내도 될 거 같네. 타 기관에도 그런 선례가 있어'라며 말을 걸었다. 난 그가 '공동으로 열어야 할거 같은데?'라고 했을 때도 의견을 바꾸지 않은 이유는 그는 어차피 의견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공동으로 열겠습니다'라고 해도 그는 또 이유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가 단독으로 열기로 결정한 이유도 결국 다른 기관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었지 어떤 법조항에 따라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툭하면 법을 말하길 좋아하는 그도 그러한 법조항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왜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돌고 돌아 원안으로 돌아오게 만들지? 그러면서 '그래야 하는 논리를 가져와'란다. 속 터지고 울화병이 생겨 회사를 정말 못 다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