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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고 싶다

by 강아

출근했더니 상사가 인사를 안 받는다. 누군 인사하고 싶어서 인사하나? 지가 인사 안 한다고 뭐라고 해서 했더니 어제 일로 삐져서 인사 안 받는 거다. 어제 일이란 단독수급으로 공고 낸걸 논리를 마련하라고 해서 품질저하와 일정지연이라고 했더니 다른 논리를 알아오라고 한 것이다.


그냥 내가 일일이 말대답하는 게 맘에 안 드나 보다. 인사를 안 받길래 '니 맘대로 하세요'하고 오전엔 태업했다. 그러더니 서기관한테 전화가 온 것이다. 그러자 급 친절하게 내게 말을 걸었다. '누구누구' 역시 이름만 부른다. 못 들은 척하고 있으니 'ㅇㅇ'이름을 부르더니 '00 과장님'하고 호칭을 부르자 그제야 아는 척을 했다. '왜 사람이 불러도 대답을 안 해'라고 하길래 속으로 '니는 왜 아침에 내 인사 안 받냐'하고 무슨 말을 하나 봤더니 곧 공표할 통계표를 마련하란 것이었다.


그럴까 봐 미리 작성해 둔 자료가 있어 그걸 전달했더니 '피드백 있는지 전화해 보고'라고 지시까지 한다. 어련히 할까만은, 그는 사무실에서 그가 지시를 내리고 나는 그 지시를 듣는 입장인걸 확연히 확인하고 싶은 거다. 아 꼰대, 아 옛날사람이라고 통탄하지만 그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업체에겐 메일을 보냈다.


그게 오전이었는데 오후가 되자 국장보고를 하는데 작년보다 수치가 줄어든 것에 이유가 필요한가 보더라. 윗선에 보고를 드리는 것에 얼마나 민감한지, 기존 공표된 자료에 수정이 필요한데, 재작년과 3년 전자료까지 바꾸면 작년수치가 준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기존 잘못된 걸 수정하지 않고 올해 수치만 보고하면 어떨까 하고 서기관이 보스한테 의견을 물었다. 잘못된 걸 고쳐야지 윗선에 드릴말일 없다고 안 바꾸는 게 말이 안 되는데 그런 게 되어버리는 꼴이라니.


결국 세부적인 인력이나 매출 등도 작년보다 줄은 것에 대해 이유를 마련하라 그래서 기업통계등록부를 재조사하라고 한다. 코시스에서 대략적인 수치만 파악함 될 거 같아 대답 안 하고 사이트를 뒤적이고 있었더니 그는 별일도 아닌 걸로 야근을 하며 그제야 이곳저곳 뒤지기 시작했다.


기분 상한 건, 통계유공표창 공문이 내려왔는데 그가 모른 척하고 있단 거다. 이렇게 뻔히 고생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날 줄 생각이 없는 걸 보면 어지간히 상사복이 없다 싶다. 주면 고깝게 받겠지만 안 준다는데 그걸 억지로 받아낼 생각도 없다. 그냥 그의 철면피에 이골이 났을 뿐이며, 채찍만 있는데 뭐 하러 일하나? 승진될 것도 아니고 하는 생각에 의욕이 없다. 회사에 속해있지 않다면 아무 쓸모도 없는 표창, 하지만 속해있는 내에는 받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 분명한데 화가 난 건 그 문서를 접수한 후배가 나는 2년 차라 대상이 아니라고 한 것 때문이다.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누굴 상을 주는지 마는지 지가 결정권이 있는지 아는 꼴이라니 그 앞에다 '이 싹수없는 새끼야'말하진 못했지만 다들 워크숍 가서 놀생각이나 하고 앉아있고 한심하기 그지없다. 워크숍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하면 '그러세요'하며 나는 안 간다. 목젖까지 올라온 불만과 욕들이 쌓여 요샌 회사외적인 시간에 모두 피아노학원에 간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은 회사에서의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것 같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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