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기

by 강아


어이없는 게 계장이 상사한테 전화하면 상사는 그걸 나한테 그대로 토스하면서 '~~ 해'명령체를 쓴다. 싹수없어서 대답도 안 하지만 그런 내게 뿔이 났는지 한 번씩 신경질적인 톤으로 목소리가 올라간다. 어제는 서기관이 작년보다 수치가 줄어든 게 이상하다고 백자료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충분히 그가 할 수도 있는걸 산하기관에 시킨다. 아무리 통계를 모른다고 해도 날로 먹으려는 거 아닌가? 그럼 상사는 내게 시키고 나는 그가 만들라고 한 자료가 뭔지 일단 이야기를 들었다. 기업통계등록부 SBR에 들어가서 내가 속한 분야의 추이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라고 한 건데 좀 이상했다. 그가 하는 말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지난 일 년간 같이 일하면서 배웠고 지난 회사생활을 통해 누구의 말도 믿지 않게 됐다.


그걸 SBR에 들어가서 봐야 한다고? 그는 나도 그와 똑같이 통계를 잘 몰라서 이번 유공표창도 주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엄연히 그와 난 다르다. 파이썬을 만져보지도 못한 사람과 대학 때 통계수업을 들은 사람과는 천지 차이이다. 식물을 전공해서 '그런다고 식물 잘 키우지 않잖아요' 빈정거렸더니 그도 '그럼 넌 경영 나와서 경영하냐?' 또 하대체였다.


아무튼 그가 한 말이 이상해서 KOSIS국가통계포털에 들어가 봤다. 그는 여느 날처럼 내 모니터를 같이 쳐다보고 있었고 내가 뭘 하나 지켜보는 듯싶었다. 그런 그가 짜증 나서 나도 이제 그가 부르면 그가 뭐하는지 모니터로 쳐다본다. 그럼 딱히 뭐 생산성 있는 걸 하지도 않는다. 나는 통계포털에서 내 가속한 분야의 추이를 찾아보려고 했고 그는 그것 때문에 야근을 하는가 싶더니 결국 나와 같은 루트로 들어가서 데이터를 보았다.


아니 상사가 결정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상위가 하라는 바를 아랫사람한테 토스만 할 거면 뭐 하러 있는지? 심지어 한 결정이 맞지도 않는다. 실무자가 '이거 아닌가?' 하면 결국 그게 맞다. 서기관은 상사에게 '데이터를 공표하기 전에 통계등록부 가서 추이를 보고 전문가자문을 통해서 확정받자'라고 말했고 그걸 상사는 내게 그대로 전했다. 하지만 내가 등록부가 아닌 통계포털을 유심히 보고 있는 걸 보더니 다음날에 와선 '어제 자문위원회 한다는 거 업체한테 안 말했지? 공표하기 전에 오픈하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했다.


맞는 게 아무것도 없다. 예전 그가 법에 사업체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니라고 협의하러 갔다 오라고 했을 때는 갔다가 망신만 당했다. 그쪽에서 오픈해주지 않는다는데 법을 들고 가면 그쪽기관은 다른 기관 탓을 하든 기관 방침이니까 안된다고 하지. 그때 이후로 상사를 안 믿게 됐는데 오늘도 결국 내 말이 맞고 그 말(결국 서기관 의견이었지만) 무조건 토스한 게 안 맞자 그는 직접 자료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게 전달하며 '이거 작성하라고 했잖아'라고 말한다. 그는 그걸 내게 작성하라 말한 적이 없다. 통계등록부에 들어가서 데이터 확인하고 전문가자문을 준비하라고 업체에 말하라고 한 게 지시의 마지막이었다. 제멋대로 본인 좋은 대로 생각하면서 일했다고 생색내는 꼴이 꼴 보기 싫어 파일을 받자마자 나가버렸다.




회사에 염증을 느끼는 게 멍청한 상사와 바뀌지 않는 관행 때문일까? 이번에 뜬 승진공고가 6급 승진만 있고 5급 승진은 티오가 없는 걸 보고 더 화가 났다. 사람을 있는 대로 굴려먹으면서 승진은 없으면 왜 일하는가? 애사심도 떨어진 지 오래고 단지 내가 퇴사하면 놀고먹는 다른 사람들이 뻔히 월급 어떻게 받아가는지 아니까 그게 아까워서 못 그만두고 있는 거다. 부서 내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불리고 상사 관심사도 내쪽에 쏠려있다. 하지만 그가 하자는 대로 곧이곧대로 안 하고(그가 맞는 말이 없으니까) 말대답하니까 그도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거다. 싸우는 것도 백번도 더 할 수 있고 회사 내 공유할 사람이 없는 것도 감내할 수 있다. 그런 거 인간에게 말해봤자 소문내기나 하고 흠집 내기나 하지 좋을게 하나 없기 때문이다. 근데 이게 아닌 거라는 확신이 드니까 지금껏 꾸역꾸역 소진해 왔던 내 마음이 '이제 그만둬'라고 말한다. 마음의 소리가 내게 말할 때 예전엔 그것에 대해 온전한 믿음이 없었는데 이젠 그걸 따르는 게 맞는 거란 걸 어렴풋이 깨달아가면서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다. 딱 8월까지다. 그 뒤엔 미련 없이 그만두자. 더 이상 돈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고 그렇다고 종족보존도 나의 목적이 아니라는 걸 알고, 이기적인 내가 누굴 만나서 결혼해서 그걸 되돌리지 못함에 대해 후회하지 않음에 감사할 줄도 알게 됐다. 이젠 퇴사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