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주도성이 강해서 회사에서는 상사들의 첨언을 참지 못한다.
그렇다고 타인의 의견을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 이유가 논리적이고 합당하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만난 상사는 대개 무능한 데다가 수직적 구조에 길들여져 있어서 윗사람의 의견을 답습하기 바빴다. 상사가 창의적인 생각이라고 내놓는 의견은 타부처에 가서 협의할 때 승인되지 않기 마련이었다. 의사결정을 할 때에도 상사와 상위부처가 내놓은 해결방안을 곧바로 이행하지 않고 결국 내가 생각한 해결방안이 채택되는 경우가 여러 번이어서 나조차도 그를 점차 불신하게 된 것이 지금 상황(서로 상극)까지 온 것이다.
상사가 지시를 내리고서 그 행위를 했는지 (내게) 다시 체크하곤 하는 게 영 못마땅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어련히 처리했을 텐데 그걸 고성으로 확인하는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그가 인간적으로 성에 차지 않으니 더욱 반발심이 커졌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그와 합을 맞춰 일해야 했던 초기에는 나도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도 도움을 줘서 그때 조금 신뢰의 감정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탐색전이었을 뿐, 얼마 전 업무를 분장한다고 하며 마련한 미팅자리에서, 그는 나의 회사에서의 성장-승진-엔 관심이 없고 그저 일을 처리할 소모품으로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되자 그를 불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요가수업에서는 확실히 달랐다. 단체가 모인 자리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상황을 선호하지 않는다. 요가강사는 내 이름을 자주 부른다.
(여기까진 상사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과 동일하다. 약간 날카로운 음성까지도. 실제로 '특히' 내 이름을 자주 부르는 것에 대해 이의제기하니 상사는 요즘 조금 조심하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강사가 날 부르는 것에 대한 저항이 덜한 이유는 내 성장에 대해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수업을 하면서 그가 핸즈온하는 부분을 개선하니 더욱 자세가 좋아졌고 미숙하게나마 나아지는 걸 나 스스로도 느꼈다. 수업을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걸 그녀가 인정해 주고, 다른 회원보다 날 더 신경 써서 체크해 주는 걸 알기 때문에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말이지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발전도 성장도 없는 직장생활을 영위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점차 나 자신을 설득하는데 한계점에 온 것 같다. '다 그렇게 살아'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더 나아지는 걸 인생의 중요한 가치로 삼는 사람에게 지난 회사생활은 회한과 환멸만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내 커리어와 발전에 관심을 가진 선생이라면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침 받아도 그를 존경하며 따를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을 찾는 게 왜 이리도 어려운 걸까. 점점 결심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