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 2차 입학시험,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상황은 사람을 찐따처럼 보이게
1차가 끝났지만 내일모레 aural 테스트가 한번 더 남아 있었다. 영어를 읽고 쓰는 건 괜찮지만 역시 말하는 건 조금 서툴러서, 교수들 앞에서 말할 스크립트를 미리 준비해 봤다.
'한국에선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는 문화가 있어. 지난 십 년간 한국의 국가기관에서 일을 했지만 경직적인 문화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꼈어. 대학 전공으로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툰 부분이 있을 수 있어. 하지만 빨리 배우는 내 습성상 학교에서 잘 적응할 것이라 생각해. 이번 기회를 통해 커리어를 바꿀 생각이야'
정도로 준비하고 다음날인 목요일은 뭔가 긴장되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쉬는 게 아닌 휴일을 보냈다. 할 수 있는 건 바흐 음악을 연습하는 것과 먹을 게 없어 장 보러 갔다 오기 정도였다. 뭔가를 완벽히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감은 해야 할 잡다한 일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꼭 장을 그날 봐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길을 돌려 싱싱 장터로 향하게 만들었고 안 먹던 빵까지 사게 만들었다. 단걸 안 좋아하지만 뭔가 기분을 고양시켜야 하는 이런 특수한 상황이면 치즈케이크가 당기는데 그럴 때 새로운 가게에 가서 시도한 케이크는 그때마다 너무 달았다.
집에 와서도 별달리 할 수 있는 건 좀 피아노를 연습하다가 내일을 맞이하는 것뿐이었다. 현충일이어서 시험날짜를 이날로 조정해 달라고 말했지만, 뭔가 시험을 준비하는데 쓰니 기분이 묘했다. 어차피 평소에 쉬는 날도 '쉼' 자체보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기간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에도 '결국에 이게 의미가 있는 건가'라는 자기 의심은 계속 날 괴롭혔다. 완전한 확실함으로 무장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진짜 된다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 퇴사인지 휴직인지-도 정하지 못한 채 그저 시간의 흐름에 내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시험을 보지 않는다고 할까도 생각했지만, 두렵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바꾸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라는 상투적인 말밖에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도전했지만 실패했던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도 했다. 그건 어느 정도 고통스러웠지만 내가 한 선택이었고 노력한 다음에는 결과를 담대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대 가서 뭐 할 건데?'라는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그 맞은편에 '그럼 회사를 계속 다녀선 뭐 할 거야?'라는 질문도 따라왔다. 그런 생각들 끝에 밤이 찾아왔고 마치 사형수의 기분으로 다음날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다음날 시험도 역시 헝가리 시간 9시, 우리나라 시간 4시였기 때문에 집에서 사일런트 피아노로 바흐를 연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는데 부동산에 내놓은 집까지 보러 온다고 해서 매매자를 마주하기 싫어하지만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신혼부부와 중개사는 함께 방문했고 집의 장점을 줄줄이 나열할 수도 있었지만 '보시다시피 전망이 좋고요, 사는 동안 편하게 살았습니다'라고 기계처럼 말했다.
그들이 가고 난 후 시험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카운트다운 5분 전 담당교수에게서는 메일이 왔다. '메일 보냈고 체크하면 조금 있다 회의를 열게'라고 했고 정신없이 악보를 훑었다.
1번째는 박자를 표시하고 음정에 맞추어 부를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였고 2번째는 반주는 피아노로 소프라노는 성악으로 부르는 문제였다.
3번째는 양손 반주를 악보를 보고 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4번째는 숫자 아래 코드가 적혀있었는데 이건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섯 번째는 역시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문제였는데 6번째가 한국의 민속음악을 부르라고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아리랑을 불렀는데 두 번째는 뭘 해야 할지 한국의 민속음악?? 생각하다가 생각이 안 나서 결국 남행열차를 불렀다. 한국의 민속음악은 무엇인가? 그나마 남행열차 가사를 안 까먹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험 보는 내내 무표정에 긴장한 표정으로 이상한 표정만을 짓다가 끝나는 순간에만 미소를 짓는 내가 찐따처럼 보였을 거 같기도 하다. 한국에선 차갑고 이지적인 사람인데 언어가 미숙하고 처음 접해보는 환경이란 사람을 바보처럼 보이게 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최선을 다했고 끝나고 나니 담대히 결정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