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잘 때웠다는 생각으로 집에 도착하자 요가까지 1시간이 남아있었다. 그 시간을 묵묵히 요가를 위한 기다림의 시간으로 사용했다. 인간에게 24시간이 주어진다면, 8시간을 수면으로 사용하고 8시간은 일반적인 회사원이 업무시간으로 사용한다면, 나머지 8시간은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회사원이 아니라면 나머지 16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정작 그런 시간이 주어지면 가는 시간을 두려워하며 어쩌다 한번 있는 이벤트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 전업주부의 무력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한다고 해서 그런 게 덜해지는 건 아니다. 단지 정해진 루틴이 이런 물음을 희석해 주는 것이지.
회사에선 너무 한가했다. 보스도 출장을 가고 팀원 대부분도 교육을 위해 자리를 비웠다. 그 교육이란 것도 결국 직원 사기진작을 위해 하는 것이지만, 회사생활이란 게 '일'그 자체보다는 친목을 다지고 여론을 형성하고 정치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사실은 '누가 더 바쁜척하나'의 경연대회인 것 같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이런 시간에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것 같지만 하루라도 연차를 내면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강제성이 없으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며 나태해지기 마련이고 그런 시간은 필연적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처럼 주어진 시간을 계획표에 따라 쓴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수많은 은퇴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무얼 할지 모르겠단 말을 들으면 생각보다 정해진 루틴의 힘은 큰 것이다.
'하루 쉬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하루를 쉬고 한 달을 쉬었을 때 그 쉬는 동안 회사를 다녔다면 벌 수 있었을 기회비용을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나'가 있을 걸 알기 때문에 아직까진 회사를 다니고 있다. 월 300을 누가 준다면? 당연히 회사는 안 다니고 바닷가마을에서 글을 쓰며 지내는 생활을 하고 싶다. 돈이 뭐길래 돈을 위해서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현실이 슬프기도 하지만 누군 '회사 생활로 얻게 되는 인맥, 커리어'는 값진 것이라며 사회생활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게 너무 쓸모없게 여겨지고 글렌굴드처럼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리고 건강염려증이 있었지만 자기 분야에서 최고를 달성한 사람을 보면 꼭 사회적이지 않아도 일반적인 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증명처럼 보여서 자꾸만 그 길로 가고 싶어진다.
그랬을 때 따라오는 부모의 실망 또한 그들이 나를 어떤 꼭두각시?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것 -으로 자식을 취급했다는 것이기에 그런 부모의 기대도 버릴 수 있을 것만 같고 회사 직원들이 어차피 그만두면 나를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 자신에게 몰두하기에도 바쁘다는 것을 아니 자꾸만 퇴사로 마음이 기우는 것이다. 오늘같이 옆 계의 제안업체가 10개가 넘게 들어왔단 걸 들으면 내가 현실에 뒤떨어져 있는가 싶다가도 나는 안 그럴 것 같고 그때마다 운이 좋을 거라는 대책 없는 긍정성은 '그만두고 실수하면 그때 다시 시작하면 되지'라고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