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집에 돌아와서 별것 아닌 것들 좀 하다가 그마저도 지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기 전에는 '누가 내 차를 박았나'하는 생각이었다.
'네'
'00 아냐?'
'누구야?'
전 남자 친구이었다. 그가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잔인하게 이별선언을 했다. 그전까지 어떤 기미도 보여주지 않은 채 차가운 원룸에 날 남겨두고 그는 떠났다. 눈물이 말라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운다음에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와의 연애는 그의 직업이 좋아서였다. 남들이 다 하는 결혼이란 걸 하려면 건실한 직업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결국 그런 것들이 이젠 껍데기일 뿐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땐 몰랐다. 그와 있으면 퇴행하는 것 같았다. 밑바닥까지 보여야 사랑하는 것인 줄 알았고 그런 걸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다. 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기다려달란 말에 그렇게 하는 것이 의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미래엔 나는 없었다.
그는 가족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를 싫어하는 날 위해 환갑까지 같이 참석했던 그였다. 그때는 그렇게 스며들어 결혼하게 되는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결혼하지 않은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느낀다. 그의 어머니가 명절에, 친척형이 사랑하게 된 여자 때문에 가족과 의절하여 오지 않는 걸 보고 '가족들이 반대하는 걸 하니까 그렇잖니'하는 것처럼 그도 가족이 반대하는 결혼이면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좋은 직업을 가진 그를 그의 집안에선 말마따나 열쇠 3개를 해올 사람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었고 날 만나는 중간에도 탐탁지 않아 한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우유부단한 그는 그런 부모의 말을 거역할 용기가 없을 거란 것도 알았고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일 것이란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는 이미 생활에 너무 밀접해 있었다. 전화가 익숙하지 않던 내게 매일 전화로 하루의 일상을 나누는 건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고 막내의 수능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결혼해?'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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