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임을 본다. 기억하고 있던 화면들이 볼 때마다 새로운 장면으로 개편된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잘 나가는 직장인이지만 누군가와 진지한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 가장 길게 만난 기간이 4개월일 정도로. 하드에는 야동으로 꽉 차있고 집엔 성인잡지가 널부러져 있고 콜걸이 수시로 왔다 간다.
누군가와 진정으로 관계를 맺지 못하는 브랜든과, 누구에게나 감정적으로 집착하는 씨씨는 내 모습과도 닮아있기도 했다. 그래서 씨씨가 자기 상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데 밖으로 나와 달리기를 하는 브랜든을 이해할 것 같았다. 사랑이 뭔지 몰라서 호의를 호감으로 착각하고 상사에게 매달리는 씨씨, 그런 동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브랜든. 사무실에 관심 있는 여성과 데이트하면서 '결혼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며 '이 식당에 있는 많은 이들이 서로 대화하고 있지 않은데'라고 하자 상대 여성은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서로 깊이 교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데서 '어, 나 어딘가 잘못되고 있는 건가'라고 느꼈다. 그런 교감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애써 그런 감정을 괜찮다며 눌러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동생이 감정적으로 브랜든에게 집착하며 '도와달라'는 요청이 계속해서 있는데도, 브랜든은 그 요구를 계속해서 밀어낸다.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그에게 요청하지만, 그는 자기 삶은 본인이 앞가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씨씨는 '일과 직장이 있는 게 본인 삶에 책임을 지는 거라면 잘났네'라고 빈정거리지만, 그게 나의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걸로 지금 삶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과 다른 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불편해지곤 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진 모른다. 브랜든은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씨씨는 너무 쉽게 상대방에게 자기를 보여줬다. 그게 그 사람의 잘못인 걸까? 어떤 의미로든 A라는 사람이 그렇게 된 건 가치관에 영향을 준 어떤 사건 때문인 걸 수도 있고, 보통 그런 사건들은 삶에서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브랜든이 많은 이들과 문란한 섹스를 하며 돌아오는 길에 어딘가 불길한 예감으로 집으로 뛰어들어오던 때 욕실에서 발견된 씨씨, 뒤늦게 그녈 케어하지 못한 걸 후회해도 과거로 되돌아갔을 때 씨씨는 그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인간이란 항상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야 후회하는 어리석은 존재니까. 나는 셰임을 볼 때마다, 바흐의 프렐류드가 흘러나올 때마다 목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며 기분이 가라앉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