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는 요양원 다녀왔다. 할머니가 섬망 증상이 생겨서 처음에는 요양원을 안 가겠다고 하는 걸 가족의 설득으로 가게 됐다. 숙모는 요양원장이다. 다들 효부라고 칭한다.
오후까지 수업이 있었는데 어머니를 픽업해야 해서 중간에 나왔다. 미리 도착시간을 말했으면 기다리게 하지 않았을 텐데 방해될까 봐 연락 안 한 거였다. (어머니는) 핸드폰도 두고 왔다. 대합실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를 보자 답답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할머니가 어머니를 낳아서 어머니가 나를 낳는 일련의 과정이 슬프다고 생각한다. 불가해한 생명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다 죽는다.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와도 될걸 불법주차를 했다는 이유로 먼저 앞장서 걸었고 어머니는 뒤따라왔다.
역 앞에서 산 호두과자 한 박스.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벨을 누르니 요양사가 나왔다. 뒤이어 숙모가 나왔는데 숙모는 차를 내어준 후 할머니를 부르러 갔다. 뒤이어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 목소리를 듣는데 눈물이 흘러나왔다. 눈물을 닦으면 흘린 게 티 나니까 그냥 흘려보냈다. 그리고 할머니를 면회했다.
할머니에게 명태 전도 주고 유부초밥도 줬지만 식사시간이 지났다며 먹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 이야기를 했는데 효부 요양원장님의 자제분이신 할머니 손녀(친척동생)는 주말마다 케어를 한다고 했다. 자식도 아닌데 그러는 건 삼촌이 하는 걸 보고 배워서일 거다. 누구는 결혼을 한다고 했고 누구는 PS로 할머니 용돈을 줬다고 했다. 할머니가 하는 말은 시공간을 배회해서 말로는 존재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색칠공부가 징그럽다고 했다. 그림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인지능력이 떨어진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져 오만 원 2장과 만 원권 3장을 어머니께 줬다. 그리고 어머니를 배웅하는 길에 어머니는 그중 십만 원을 차비하라고 내게 줬다. 나는 자꾸 눈물이 나와서 돌아오는 길에 눈을 크게 떴다.